제목 | 4월의 문화인물 【송암 박두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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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4-03 | 조회 | 1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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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박두성(松庵 朴斗星) 1888-1963】 ▶시작장애인 교육자 ▶한글 점자 창안, 조선어 점자연구회원회를 통하여 한글점자 보급 ▶시각장애인을 위한 주간 회람지 <촉불> 발행 ▶주요서적 점역보급(성경, 명심보감, 의학서적 등) 한글점자 창안자이며 시작장애교육에 생애를 바친 박두성은 구한말인 고종25년에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에서 박기만씨의 6 남 3녀중 맏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8세가 되던 1895년 7월 무관 출 신 성제(誠濟) 이동휘(李東輝)가 강화도에 세운 보창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보통학교의 신학문을 수학하고 성제의 주선으로 한성서범학교 (현 경기고등학교 전신)에서 수학하였다. 졸업후 어의동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 전신)교사로 발탁되어 8년간 근무하였다. 그후 1913년 제생원(濟生院) 맹아부 설립과 함께 교사로 발령됨으로 써 시각장애인과 인연을 맺고 시작장애인들에게 한글점자를 창안하여 주어서(1926년)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이 마음대로 한글점자를 읽고 쓰 게 하여 암흑 속에서 허덕이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광원을 찾아주는데 평생을 바치신 분이며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세종대왕으로 일컬음을 받 는 분이시다. 박두성의 시각장애인 교육관은 애맹정신의 실천, 끊임없는 권학정신, 생활자립을 위한 교육강화, 잠재능력개발이었으며 이에 평생동안 자신 의 몸과 마을을 바쳤다. 박두성의 위대함은 한글점자 창안은 물론 한 글점자의 보급을 통해 우리나라 시각장애인계의 문맹퇴치에 기여한 것 이다. 성경을 비롯 76종의 맹인용 교육자료 도서를 점역 출간였으며 점자도서의 보금사업, 통신교육사업 실시. 주간 회람지, <촉불>발행등 을 통하여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이 한글점자를 생활에 사용할 수 있게 하였고 조선어 점자연구회, 육화사등의 연구조직을 결성, 한글점자를 더욱 연구함으로써 그 실용성을 높였다. 박두성의 신념은 시작장애 교육이 단지 장애인교육이나 자선사업이 되 어서 안되며 직업교육과 더불어 시각장애인계를 이끌어갈 지도자 양성 과 민족정신을 싹티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박두성의 신념은 일제치하의 조선어 말살정책으로 모든 학교 의 조선어 교육이 폐지된 상황에서도 제생원에서는 우리 말과 글의 공 교육이 계속되도록 하였다. 실명이라는 1차적인 신체적 장애에 시작장애인이 마음대로 읽고 쓸 한 글점자가 없으면 시작장애인의 심안을 밝히지 못하며 이로인해 제2차 3차로 장애가 중복 심화되어 정서불안 열등감 비사회적 행동의 부처 적 장애를 가져오게 됨으로 점차 이질적인 방향에로 고착화되기 쉽습 니다. 이러한 장애를 예방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시각 장애인에게 문자를 주어 그들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길 밖에는 없습니 다. 박두성의 이런 애절한 진정은 총독부를 설득하였다. 당시 구전식 교육과 점복업을 주로 하는 시각장애인의 생활기반에 박 두성이 시각장애 교육에 투신함으로써 한글점자의 창안과 보급, 교수 학습방법의 기반 연구등을 통해 우리나라 시작장애 교육은 그 당대에 거의 현대적 모습을 완성하였다. 그리하여 박두성의 가르침은 직간접 으로 시각장애자 지도자. 교육계.종교계.의약계. 예술계의 박사들을 비롯 수많은 인재들을 우리나라 사회에 배출하였다. 박두성은 우리나 라 모든 시각장애인의 정신적 지주임과 동시에 애맹사상가로 그 불멸 의 업적은 오늘날은 물론 후세에까지 길이 빛날 것이다. ▶기념행사 계획 【제2회 전국 시각장애인 초청 걷기대회】 ▶ 일시 : 2002. 4. 18(목) 10:30 ▶ 장소 :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달우물 마을) ▶ 내용 : 기념식, 시각장애인 걷기대회, 시각장애인 장기자랑 및 연애인 공연 등 ▶ 주최 : 송암 박두성 추모회(박용호) 032-933-4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