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소파 방정환 선생 | ||||
---|---|---|---|---|---|
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5-02 | 조회 | 1581 |
첨부 | |||||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 나라 어린이를 위하여 일생을 바치신 고마운 분이시며 한국 어린이 운동에 횃불을 밝히신 분이다. 선생은 우리나라 가 일본으로부터 억눌림을 당하던 때인 1899년 11월 9일 서울 당주동 에서 미곡상을 크게 경영하던 방경수씨의 장남으로 출생하셨다. 선생이 9세가 되던 해 할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내 면서도 이웃 친구들을 모아 소년입지회(소년회)를 조직, 회장이 되어 우정을 두텁게 했으며 토론회와 연설회를 열어 말하는 훈련을 쌓으며 꿈을 키우는 하편 1913년 3월 25일 미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의 권유로 선린 상업학교에 진학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졸업을 1년 앞두고 중퇴. 취직을 하여 가정을 도우셨다.
그후 33인의 대표시며 천도교 제3대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의 3년 용 하씨와 결혼 19세에 가정을 이루시고 어린이 운동에 전념하시다가 1918년 보정전문학교(보성법률 상업학교)에 입학한 이듬해 1919년 3 월 1일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집에서 등사기로 직접 호외를 박아 뿌리고 독립선언문을 돌리다 일경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받기도 했 다. 선생은 그일로 일본 관헌의 등살을 피하여 동경유학의 길에 올라 일 본 동양대학 철학과에서 아동문학과 예술, 아동심리학을 공부하면서 1923년 4월 28일 당시 동경에 유학중인 윤극영, 조재호 선생등과 뜻 을 같이 모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운동단체 색동회를 조직 귀국하 여 어린이 운동에 앞장서서 어린이란 말을 처음 쓰고 어린이날을 만들 어 전국을 순회하며 동화구연으로 어린이들을 웃기고 울리며 민족의 혼을 넣어 주셨고 손수 글을 쓰시고 어린이 잡지 등을 만들어 햇불이 되어 주셨다 연극공연, 어린이잔치, 세계아동전람회, 축구대회와 강연회등 왜경의 방해와 박해를 수 없이 받으며서도 뚱뚱하신 몸을 날아다니시듯 어린 이 사랑을 피시다 33의 짧은 나이로 영원한 동화의 나라로 가셨다. 선생은 운영하시던 마직막 순간까지 색동회 동지들의 손을 잡으시 고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셨으니 선생은 가셨지만 어린이의 가슴속에 영원한 친구로 길이 남아 계실 것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