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소파 방정환 선생 | ||||
---|---|---|---|---|---|
작성자 | 청양문화원 | 등록일 | 2002-05-02 | 조회 | 1448 |
첨부 | |||||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이 나라 어린이를 위하여 일생을 바치신 고마운 분이시 며 한국 어린이 운동에 횃불을 밝히신 분이다. 선생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부터 억눌림을 당하던 때인 1899년 11월 9일 서울 당주동에서 미곡상을 크 게 경영하던 방경수씨의 장남으로 출생하셨다. 선생이 9세가 되던 해 할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내면서 도 이웃 친구들을 모아 소년입지회(소년회)를 조직, 회장이 되어 우정을 두 텁게 했으며 토론회와 연설회를 열어 말하는 훈련을 쌓으며 꿈을 키우는 하 편 1913년 3월 25일 미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의 권유로 선린 상업학교 에 진학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졸업을 1년 앞두고 중퇴. 취직을 하여 가정을 도우셨다. 그후 33인의 대표시며 천도교 제3대 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의 3년 용하씨 와 결혼 19세에 가정을 이루시고 어린이 운동에 전념하시다가 1918년 보정 전문학교(보성법률 상업학교)에 입학한 이듬해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 동이 일어나자 집에서 등사기로 직접 호외를 박아 뿌리고 독립선언문을 돌 리다 일경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받기도 했다. 선생은 그일로 일본 관헌의 등살을 피하여 동경유학의 길에 올라 일본 동양 대학 철학과에서 아동문학과 예술, 아동심리학을 공부하면서 1923년 4월 28 일 당시 동경에 유학중인 윤극영, 조재호 선생등과 뜻을 같이 모아 우리나 라 최초의 어린이 운동단체 색동회를 조직 귀국하여 어린이 운동에 앞장서 서 어린이란 말을 처음 쓰고 어린이날을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며 동화구연 으로 어린이들을 웃기고 울리며 민족의 혼을 넣어 주셨고 손수 글을 쓰시 고 어린이 잡지 등을 만들어 햇불이 되어 주셨다 연극공연, 어린이잔치, 세계아동전람회, 축구대회와 강연회등 왜경의 방해 와 박해를 수 없이 받으며서도 뚱뚱하신 몸을 날아다니시듯 어린이 사랑을 피시다 33의 짧은 나이로 영원한 동화의 나라로 가셨다. 선생은 운영하시던 마직막 순간까지 색동회 동지들의 손을 잡으시고 "어린 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셨으니 선생은 가셨지 만 어린이의 가슴속에 영원한 친구로 길이 남아 계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