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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이달의 문화인물-김병연 글의 상세내용

『 2002년 9월 이달의 문화인물-김병연 』글의 상세내용을 확인하는 표로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 첨부, 내용으로 나뉘어 설명합니다.

제목 2002년 9월 이달의 문화인물-김병연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2-08-23 조회 1000
첨부  

생애 및 업적 

 

김병연(蘭皐 金炳淵) : 1807∼1863, 조선후기 시인, 방랑시인 김삿갓. 짙 

은 해학과 풍자를 담은 시들을 비롯,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김. 

주요시집 : <김립 시집(金笠 詩集)> 

 

그는, 이름이 병연(炳淵), 호는 난고(蘭皐)지만, 세상 사람들은 삿갓을 쓰 

고 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삿갓''이라고 불렀고, 어느만큼 인정을 나 

눈 

사이에서는 성(性)인 ''김''을 붙여 ''김삿갓''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 

의 이 

름을 ''김삿갓''이란 뜻인 ''김 립(金 笠)''으로 주로 표기했다. 

1807년(조선조 순조 7년) 3월에 한양성의 북서쪽인 경기도 양주군의 북한강 

이 가까운 곳에서 태어났으며, 5세 때인 1812년 12월에 서북 지방(평안도) 

의 청천강 북쪽 지역에서 일어난 <홍경래 난>이 그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 

았다. 

조정의 서북지방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고 관리들의 수탈과 학정에 저항해 

서 일어난 이 난은, 단 10일 만에 청천강 북쪽 지역의 8개 군·현을 장악 

해 버릴 정도로 백성들의 큰 호응과 적극적인 참여가 있는 정도였다. 

이 때 공교롭게도 그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은 그 8개 군·현 가운데 하나인 

선천군의 부사 겸 방어사로 있었다. 할아버지는 일단 난군에게 항복하였다 

가 적진을 탈출했다. 

그러나 항복한 뒤에 적을 위해 협력하고 탈출한 뒤에는 남의 공을 가로챘다 

는 이유로 대역죄를 받아,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했다. 그 때 다행히 할아버 

지를 뺀 나머지 가족은 목숨을 구했으나, 그는 형과 함께 황해도 곡산에 있 

는 종의 집으로 가서 피해 살았다. 7세 때 가족이 다시 북한강변에 모여 살 

게 되지만 그곳에서 아버지와 동생이 죽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어머니와 

형 그리고 김병연만이 강원도 영월로 숨어들어 앞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 

다. 

김병연은 20세 때의 봄에 영월 관아에서 실시한 백일장에 응시해서 장원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가을에 열릴 초시(생원시, 진사 

시)를 포기하고 곧장 한양으로 나갔다. 그는 한양에서 신분을 숨긴 채 2년 

간쯤 의도적으로 명문대가의 자식들을 사귀어 교유하면서 벼슬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실력이 출중한 그는 어렵지 않게 그 길을 찾게 되지만, 그 사이에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벼슬길은 그가 나갈 길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병연의 방랑길은 그런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러운 벼슬길에 대한 

욕망을 다 털어 버리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세상을 떠도는 자유인의 길이, 

그가 택한 길이었다. 

그의 시는 해학과 서정, 관조적 허무와 격물정신으로 규정된다. 부정과 불 

의에 부딪치면 해학은 풍자와 조소의 칼이 되고, 절경과 가인을 만나면 서 

정은 술이 되고 노래가 된다. 또한 인생을 살필 때는 눈물이 되고 한숨이 

되지만, 사물들을 앞에 두었을 때는 햇살이 되고 바람이 된다. 

그의 자유혼은 시의 소재나 형식에서 규범과 탈규범을 넘나들기도 한다. 한 

시의 전통적 방식을 거침없이 해체해서 파격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한시 

를 음이 아닌 뜻으로 읽게 한다든지, 한글을 섞어서 쓰는 시들이 그런 경우 

가 될 것이다. 

그는 1863년(철종 13년)의 봄에 57세의 나이로 전라도 동복현(전남 화순군 

동복면)의 달천변에서 35년쯤의 긴 방랑시인의 삶을 마감했다. 

그가 그곳을 죽음의 자리로 택한 것은 무등산 자락에 있는 달천이 ''적벽 

강''이라 부를 정도로 경치가 퍽이나 빼어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 

다. 

김병연은 1천여편의 시를 쓴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재까지 456편의 시가 찾 

아졌다. 그가 현대인에게도 익숙한 사람이 된 것은,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이야기들을, 그것도 방방곡곡을 떠돌면서 꽃잎처럼 낙엽처럼 날려버린 시들 

을 이응수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모으고 정리하여, 비로소 그가 죽은 지 

76년 만인 1939년에 김병연의 첫 시집인「김립 시집」을 엮어 냈기 때문이 

며, 그 속에 실린 내용과 형식이 다양한 시들과 흥미있고 통쾌한 일화들을 

자료로 삼아, 여러 시인·작가들이 시집과 소설로 발간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근래에 와서 다분히 흥미 위주로 보아온 그의 시들을, 형식 

의 파격성과 내용의 민중성을 문학사적으로 재평가하는 작업이 몇몇 학자들 

에 의해 이루어져서 성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그는 5세 때부터 이곳저곳으로 피해 살아야 했고, 청년기 이후에는 방랑생 

활로 일관했기 때문에 생애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대부분을 추정에 의존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그가 남긴 시와 일화들이 

더욱 신비로우며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출처:문화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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