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02년 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장건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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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북구문화원 | 등록일 | 2002-12-02 | 조회 | 1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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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c="http://www.independence.or.kr/NEW/news/monthly/monthly_leader_kr/ phot/200212i.jpg"align="left"> 장건상 ( 2002 / 12)
소해(宵海) 장건상(張建相) - 1882. 12. 19 - 1974. 5. 14
장건상은 1882년 12월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 1905년 와세다대 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미국인에게 군사훈련을 받은 것이 발각되어 퇴학당한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법학을 공부하 였다. 1916년 상해로 망명하여 동제사(同濟社) 등의 독립운동단체에 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임시의정원 의원 겸 외무부 차장으로 선임되었다. 1921년 신채호와 함께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에 대해서 성토하는 한편, 북경에서 전개된 군사통일회의에도 참여하여 무장독립전쟁 노선을 추진하였다. 1921년 이후에는 재로한인공산자대회, 극동 피압박인민대회 등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1923년에는 상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대회의 기초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26년 북경에서 김성숙(金星淑)과 함께 『혁명(革命)』이라는 잡지를 발간 하는 한편으로, 관내지역에서 전개된 민족유일당운동의 북경지역 집행위원 으로 선임되어 민족연합전선의 결성에 노력하였다. 1939년 일제에 피체, 국내로 압송되었으나 1941년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 이후 1942년 일경의 감시를 피해 중경으로 탈출하여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겸 학무부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고, 광복을 앞두고는 임시정부의 대표 로 연안에 파견되어 조선독립동맹 등 좌익진영과의 대동단결을 위해 활동하 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환국 이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혁신적인 정치세력으로 활동하던 중 에 혁신당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구속되어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노령(老齡) 등의 이유로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독립운동선상에서의 업적을 인정하여 1986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ㅇ 1916 : 상해로 망명하여 동제사(同濟社)에 가입 ㅇ 1919 :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임시의정원 의원, 외무부 차장 ㅇ 1942 : 국무위원 겸 학무부장 (1986년 :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우리들은 각 혁명단체, 각 무장대오, 전체 전사 급 국내외 동포로 더불어 전민족적 통일전선을 더욱 공고 확대하면서 일본제국주의자에 대한 전면적 무장투쟁을 적극 전개하기 위하여 최대의 노력을 경주한다. 전체 전사, 전 체 동포제군! 일체의 준비와 행동은 다 이 반일투쟁의 조직발동을 중심으 로 하기 바란다. …… (1944년 선생의 임시정부 국무위원 취임 직후 임시정부에서 발표한 <국내 외 동포에게 고함>에서,「獨立新聞」(重慶版), 1944년 8월 9일자)
ㅇ 전시기간:2002. 12. 01 ∼ 12.31 ㅇ 전시장소:독립기념관 이달의 독립운동가 상설 전시실(제2∼3전시관 통 로) ㅇ 전시내용
1) 장건상 인물사진 : 입간판용- 제1전시관 이 달의 독립운동가 수록용 인 물사진 2) 일본 유학시절의 장건상. 선생은 1905년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 성을 위해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유학하였으나 민족차별정책으로 1년 만에 자퇴하였다. 3) - 4) 1·2 선생이 미국유학 시절 영어 단어를 익히기 위해 사용한 수첩 과 노트. 선생은 1908년에 미국으로 유학하여 기독교계통의 발프레이조대학 교에서 수학하였다. 5) 1924년 1월에 발표된 의열단 격문. 선생은 의열단 결성 이후 김대지(金 大池)와 함께 고문의 자격으로 기밀부(機密部)의 요직을 맡아 활동하는 등 의열단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다. 6) 대한민국임시정부 제34차 임시의정원 개회 기념(1942. 10. 25 - 11. 4). 제34차 임시의정원 의회에서 선생은 국무위원 겸 학무부장에 선임되었 다. 7) 제34차 임시의정원 의회가 개최된 중국 중경의 오사야항 청사. 8) 대한민국임시정부 제36차 임시의정원 의회 선언. 국내외 동포들에게 임 시정부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와 옹호를 호소하는 선언문을 발표하였고, 선 생은 제36차 임시의정원 의회에서 국무위원에 당선되었다. 9) 1945년 11월 환국하기 위해 중국 중경의 임시정부 청사를 떠나기 전날 쓴 선생의 유묵. 「세계의 평화와 민족의 자유를 위해 분투하는 자를 혁명 가라고 부른다」고 적혀 있다. 10) 국회의원 당선을 축하하는 장택상의 전보문 11) 말년에 남긴 선생의 친필 12) 1968년 12월 대통령 박정희가 선생의 건강과 안부를 물은 서신 13) 대전 국립현충원에 위치한 선생의 묘지 전경 14) 1990년 4월 독립기념관 경내에 세워 진 선생의 어록비. 15)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던 벼루. (출처: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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