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홍성의 옛 사진 ⑫/ 광천 옹암리 포구의 어제와 오늘 | ||||
---|---|---|---|---|---|
작성자 | 홍성문화원 | 등록일 | 2013-07-08 | 조회 | 942 |
첨부 |
![]() |
||||
“광천독배로 시집 못가는 이내 팔자!”
홍성 인근에서는 30여 년 전 시집갈 적령기가 된 처자들이 신세한탄을 하며 부러워한 마을이 있다. ‘광천독배로 시집 못 가면’ 노래로까지 만들어 부러워하고 한탄할 정도로 풍성하고 넘치게 살았던 마을이 바로 바다 뱃길이 열리던 옛 포구마을 옹암리이다. 옹암리는 광천의 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중앙에 독같이 생긴 바위가 있었다고 해서 ‘독배(독바위)마을’로 불린 옹암리는 서해가 만을 형성하며 내륙 깊숙이 들어 온 옹암 포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포구마을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시장과 상업이 발달한 마을이었다. 옹암리 전성기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돼 60년대, 70년대 초까지 이어진다. 옹암리 전성기 때 장시가 열리는 당일과 장 안날에는 육지와 섬에서 들어오는 많은 외지인들로 언제나 넘쳤다. 이렇듯 옹암리는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궁무진한 노동 기회를 주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거리를 찾아 이 마을로 전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 장날이면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렇게 번성했던 옹암리는 갯고랑에 토사가 쌓여 뱃길이 좁아지게 된 70년대 중반 이후부터 포구 기능이 약화되다가 90년대 후반에 농업기반공사가 물길이 들어오는 어귀에 방조제(보령방조제)를 쌓으면서 완전히 폐항된다. 옹암리 쇠퇴는 방조제를 쌓으면서 비롯됐지만 또 한편으로는 육상교통의 발달로 인한 수운교통의 쇠퇴도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옹암포 기능이 쇠퇴하면서 마을 상황도 급격히 쇠락했다. 포구 상업에 종사했던 대다수 주민들은 다른 생계수단을 찾아 떠나거나 어렵게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포구가 쇠퇴한 뒤 마을은 얼마동안 침체를 겪었지만 옹암리는 언제까지나 침체의 늪에만 빠져있을 수는 없었다. 바로 마을 뒤편 ‘당산’ 아래에 있었던 저장토굴 덕택으로 새우젓이 마을에 남게 됐다. 이제 옹암포는 사라졌지만 그 뱃길은 하천이 되어 흐른다. 바닷길을 완전히 되찾을 수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광천천 생태하천 조성사업이 옛 옹암포의 영광을 아쉬운 대로 복원해 주길 기대한다.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옹암포의 뱃길이 광천토굴새우젓·재래맛김 축제를 통해 재현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