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02년 9월 이달의 호국인물-임병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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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북구문화원 | 등록일 | 2002-08-30 | 조회 | 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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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래(林炳來) 해군 중위(1922. 1. 17 ∼ 1950. 9. 14)
1922 평안남도 용강 출생 1941 평양숭인상업학교 졸업 1950. 4 해군 소위 임관
임병래 중위는 해군 첩보부대의 창설요원으로서 건군 초기의 해군 정보업 무 체제정립과 전력증강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특수공작대의 조장으로 선발 되어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인천·서울지역으로 잠입, 정보를 수집하는 영흥 도작전에 참가하였다.
또한 1950년 8월 24일 인천 남서쪽 26km 지점에 있는 영흥도에 조원들을 이 끌고 경비검문이 강화된 적 지역을 왕래하며 월미도와 인천의 적 방어시설 ·해안포대의 위치 및 기뢰설치 여부·경인지구의 병력배치 등의 첩보를 수 집하여 해군본부와 맥아더사령부에 제공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인천상륙작전 개시 하루전인 9월 14일, 공작대의 활동을 탐지한 북한군이 1 개 대대 병력으로 영흥도를 공격해 오자 임병래 소위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 여 일부 대원들을 탈출시켰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대부분의 대원들이 전 사하고 퇴로가 차단되자 정보가 누설되어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할 것을 우려 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
정부는 신명을 바쳐 군인의 본분과 소명을 다한 임병래 소위의 위훈을 기 려 1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고, 미국 정부에서는 은성훈 장을 추서하였다. (출처: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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