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메뉴 닫기
서브페이지 배경
조선초의 무신 유기창 게시판 상세보기

[서천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조선초의 무신 유기창
작성자 전체관리자 등록일 2001-11-22 조회 1027
첨부  
 
유기창(兪起昌)은 1437(세종 19)∼1514(중종 9). 조선 초기의 무
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 는 자성(子盛), 호는 서호산인(西湖
山人). 참판 해(解)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한 뒤 1496년(연산군 2) 만포진첨절제사(滿浦鎭僉節
制使)가 되고 뒤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504년 좌의정 성준(成俊)이 왕의 난정(亂政)을 극간하다가 교살
될 때 그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으며, 그뒤로는 벼슬길에 나가
지 않았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어 비인현(庇仁縣)에 은거하
면서 사냥으로 나날을 지냈다. 그후 조정에서 병조 참의의 벼슬
을 주었으니 나가지 아니하고 이땅에서 늙도록 벼슬을 주는 것
은 병을 주는 것과 같다 하였다.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근엄하며
9군(郡)을 역사(歷仕)할 때 명성과 공적이 있었다. 위명으로 옛
직함 첨추로 신주를 만들라 함으로 향리 사람들이 청절사를 지
어 제사지냈다. 중종 9년 1514년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