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맹사성(孟思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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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천문화원 | 등록일 | 2002-05-07 | 조회 | 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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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희도(孟希道)의 아들로 호가 일명(日明) 또는 고불(古佛)이다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성품이 효성 스러워 부모의 상에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살았다. 묘 앞에 잣 나무가 있었는데, 어느날 산돼지가 나무를 부딪쳐 나무가 말라죽 게 되자 맹사성이 나무를 안고 울었다. 그러자 그날 밤 산돼지 가 호랑이에게 먹혀 죽어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 다. 세종때에 살아서 정려(旌閭)를 받아 양세정려비가 한산 맹 씨 3세묘단 아래에 있었다. 태종때 부마인 도위(都尉) 조태임(趙太臨)의 사나운 횡포가 뜻 이 없을 정도였는데, 공이 대사헌이 되어 집의 박안신(朴安身) 과 함께 조태임을 좌부장살(坐府杖殺)시켰다. 태종은 죄가 아니 라 하고 권면하였으며, 세종때에는 정승으로 있으면서 항상 검 은 소를 몰고 다녔으니, 호가 흑우(黑牛)였다. 지금 부녀자와 어린이들이 모두 그렇게 칭한다. 성품이 음율(音律)에 능하여 항상 옥적(玉笛)을 불어 마을에 보랏빛 이슬을 내리게 하였으 니, 훗날 사람들이 그 동네를 자로동(紫露洞)이라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