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라를 걱정하던 비인의 선비 남회(南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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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천문화원 | 등록일 | 2002-05-10 | 조회 | 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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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의 인물 중에 역사에서 사라져간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남회
는 그러한 하나의 예가 될지 모른다. 바로 실록의 기사를 통하 여 이들을 찾아 발굴하고 사연을 정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 다. 효종 1년(1650) 11월 22일조 기사를 보면 비인 유학 남회 가 상소를 올려 왕으로부터 초야의 선비로서 나라를 근심하고 임 금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이와 같이 진언을 하니 내 매우 가상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중종34년(1539) 7월 5일에 는 한산 군수 이약빙(李若氷)이 상소를 올려 노산군(단종)을 위 하여 후손을 세울 것을 청하였으며, 효종 3년 (1652) 12월 7일 서천 군수 이무(李茂)는 서천의 피폐상을 낱낱히 들어 아뢰기를 ''궁가에서 떼어 받은 땅은 일찍이 임자가 있던 땅이니, 어리석 은 백성이 어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둑을 쌓는 일 이 있으므로 역을 진 백성이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지세가 낮아 서 장마를 겪으면 반드시 무너지므로 쌓으면 곧 무너지곤 하여 끝날 기약이 없습니다....(중략)... 또 고을 경내에 천방사가 있 는데 이제 또한 궁가의 원당이 되었으므로 중들이 기세를 부려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니, 밝은 세상에서 어찌 이래서 야 되겠습니까. 또 근래에 가을 환곡을 거두는 게 한창 급한데 국가에서 반만을 거두라는 명이 있었고 군대를 보충하는 일이 긴 급한데 국가에서 정지하라는 명이 있었으므로 백성이 거꾸로 매 달린 데에서 풀린 듯이 기뻐합니다마는, 군무로 말하면 날로 허 술해져서 속오군(束伍軍)에 편입된 자도 다 두 역이 있으니 사사 로이 그 기예를 익히려 하더라도 될 수 있겠습니까? 노약자를 덜 어내어 보인으로 내려 충당하여 본래의 액수를 정하지 말고 오 직 정예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라 하였는데, 왕이 이에 대하여 아뢴 말은 모두 나라를 근심하 고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이니, 매우 가상하여 두세 번 보았다. 그대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이러하다면 내가 한 고을에 대한 근심이 없어질 것이니, 그대는 더욱 공경해야 한다. 몇 가지 폐 단은 담당 관아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치하게 하겠다 하고 승정원 에 명령을 내리기를 "이른바 천방사라는 것은 어느 궁가에 속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 고을의 사세가 매우 절박한 듯하니, 그 고 을에 도로 붙이게 하라."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