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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 미 (洪 米)
작성자 서천문화원 등록일 2003-07-16 조회 644
첨부  
 
홍 미(洪 米) : 본관이 남양으로 자는 자보, 호는 과묵당이다.
선조 때 태어났다. 학문에 재주가 뛰어나고, 문장이 빠르게 성장
했다.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는데 부지런히 탕약을 다려
드렸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드렸으며, 부모의 상에는
슬퍼하며 예를 다하고 평생 치아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밖으
로 나아가지 않고, 죽림모옥에서 지내며 리를 말하는 것을 사절
하고 고향에서 지내면서 글을 읊고 평생 모든 성현의 책을 공부
하였다. 인종조 정묘년의 어려움 속에 호인과 모의하여 의병을
일으키고 공이 추대되어 도청으로 가 군사를 모으다 왜적이 모
두 물러갔다고 하니 그만드었다. 계축년 문행으로 이름을 떨쳐
참봉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고 돌아왔다.
병자호란 때, 본군 군수 이안진과 더불어 의병을 모았는데, 좌순
찰서 정세규의 의성를 들으니 일도와 조정에 많았다. 공이 세
번 대군사부를 제수받고 모두 취하지 않다가 데ㅐ군이 북에 볼모
를 끌려가서 또 사부의 벼슬을 받았을 때 공의 나이 60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공을 걱정하니 공이 말하기를 국가가 어렵고 위태
로워 대군이 나라밖으로 내보내져 알지 못하는 나라에 있으니 비
록 늙었지만 감히 어렵다고 싫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심양으로 ?따
라 나가 어렵고 위태로운 것을 바르게 하겠다. "서행록"이 있
다. 상이 아름답게 여겨 말 한 필과 궤장를 내렸고, 삼가현감을
제수하였다. 선정비가 있다. 숙종 정해년 열읍의 선비들이 제사
를 지냈으나 지금은 터가 남아 있지 않다. 묘갈문을 대사성 권유
가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