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안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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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천문화원 | 등록일 | 2003-07-17 | 조회 | 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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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진(李安眞) : 이광의 아들. 자는 보여, 호는 청ㅎ 문학으로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고, 생원진사시에 입격하였다. 광해군 계축 년(1613) 8도의 관학생들을 이끌고 상소를 올려 정도, 윤인, 이 위경등에게 죄를 주어 목을 벨 것을 청하였다. 인조반정후 청양 현감을 제수받고 을해년(1635)한산군수에 올랐다. 병자호란때 관 군을 모아 의병장 홍미과 함께 행군하여 직산에 이르렀을 때 화 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 조정에서 숭 덕연호를 쓰도록 명하자, 공은 치욕스럽게 여겨 벼슬을 버리고 제천 골짜기로 들어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최감파가 연에 있으면서 시로써 보내어 이르기를 "한가롭게 척박한 밭을 일구 니 봄이 스스로 은산에 와있구나. 어찌 나아가 방미를 케겠는 가."하였다. 세상이 칭하기를 ''계해징사또는 숭정처사''라 했다. 숙종때 많은 선비들이 글을 진달함으로써 이조참의에 증직되었 다. 국자지의 존주 및 봉당집에 호남의 많은 선비가 서원을 세우 기 위해 통문을 돌린 것이 있는데, 여기에서 이르기를 ''글을 올 려 부르짖으니 대궐을 떠받치는 동방의 3뱍년 법도에서 벼슬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 굳게 서있는 나무가 있으니 천하에 천만세가 르침이 된다. 한산동문안에 유애비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