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화 | ||||
---|---|---|---|---|---|
작성자 | 서천문화원 | 등록일 | 2003-07-17 | 조회 | 637 |
첨부 | |||||
이영화(李永華) : 본관이 광주로 재주와 슬기 뛰어나고 충의와
용기가 있었다. 묘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에 제수되었다. 정 묘년 북쪽에 우환이 있어 장충신 장군이 무사를 뽑아 별대를 조 직하고 무예를 시험하였는데, 과녁을 세워놓고 백보 밖에서 화 살 20개를 쏘아 화살을 모두 구명에 맞추니 온 군대가 모두 놀랐 다. 병자호란을 당하여 같은 군사람 성진후와 더불어 분개하며 난에 뛰어들어 용인에 이르렀다. 본도 관찰사 정세규의 군대에 들어갔는데, 군대가 패하였다. 또 화의가 성사됨을 듣고 분개하 여 떨쳐 일어나 말하기를 "사나운 의로움을 생각한다면 이때에 살아있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라 하고 거듭 옷을 풀어 맡 기며 말하기를 "만약 내가 죽는다면, 이 옷을 나의 집에 가져다 초혼장을 지내 게 해달라." 하고는 마침내 칼을 뽑아들고 적진으로 돌진하여 죽 었다. 집안 사람들이 그 옷으로써 군 동쪽 갈마산 남록 간원에 장사냈다. 권헌이 묘지를 짓고 소이재 권령이 묘표를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