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현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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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천문화원 | 등록일 | 2003-07-17 | 조회 | 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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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李賢錫) : 이준의 아들로 자는 봉경, 호는 서강이다. 효
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렸다. 일 찍이 생원과 진사가 되어 숙종 병인년에 얼신 조사기가 인현왕후 를 무고하여 욕보이자 제생들과 더불어 상소하여 법을 살필 것 을 청하였다. 무진년(1688)가을에는 친구인 윤경적 등과 상소하 여 시사를 논하였다. 기사년에는 왕후가 폐위되자 정재 박태보 를 따라 후에는 여러 선비들을 불러 스스로 상소문을 지어 이를 여러 번 올렸다 그러나 후원이 막음에 따라 이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궐문 밖에서 소리를 내어 슬피울었다. 갑술 년 환국에 장희재를 벌하였는데, 성균관 학사 서문택, 김유경 등 이 춘추시대 조돈의 뜻을 끌어 당시의 재상을 벌려 줄 것을 청하 였고 이로 인해 해를 당하였다. 벼슬이 종묘봉사에 이르렀다. 재 상 이의현이 기사년에 죽은 선비라고 칭하였다. 문공경 여호 박 필주가 일찍이 말하기를 "우리 집안의 정재 박태보와 더불어 서 로 같이 갈 만하다"라고 이른 것이 "국자지"에 기록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