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우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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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천문화원 | 등록일 | 2003-07-17 | 조회 | 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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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상(申禹相) :신광수의 아들이고 호는 뢰운 또는 전옹이라 한
다. 영조 기묘년(1759)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무작년(1768) 오제에 장원하였고, 신묘년(1771)승문원에 응시하여 또 장원하 여 한림에 제수되었다. 입시할 때 마다 한 어제시에 여러 마음으로 화봉에서 축원하는 공을 이루니 성인의 이룬 속 깊음에 여러 선비들이 편안하구나. 푸른 머리의 여러 신선들이 북두에 모엿으니, 옥황게서 천년 동안 살라고 하였네. 등 편이 여러 차례 포상을 받아 글을 빨리 짓는 재주가 있다고 칭찬을 받았다. 그지조가 확실하여 문장이 넉넉하였으며, 영민하 여 한 번 본 것은 쉽게 기억하였다. 붓을 잡고 쓰기를 팔이 사헌 부에 들어가고 칠이 사간원에 오른다라고 하였다, 일찍이 출세하 지 못하고 현달함을 사소하고 큰 것으로 삼지 않고, 향리에 돌아 와 후진을 권면하여 그 문하에서 교유한 자들이 모두 벼슬에 올 랐다. 정조 무오년(1798)에 임금이 사간으로 급히 부르자, 현도 상소를 올려 시폐와 사학을 역진하여 임금이 특별히 비답을 내렸 다. 그 영락함을 애석하게 여기고 또한 그 사리에 맞는 말을 칭 찬하였다. 관직이 사간에 이르렀다. 묘는 군남의 하양동 자원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