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첨(李詹) 1345(충목왕 1) - 1405(태종 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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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당진문화원 | 등록일 | 2004-07-09 | 조회 | 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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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조선초기의 문신이며 문장가로 자(字)는 중숙(中叔), 호 는 쌍매당(雙梅堂), 본관은 신평이니 증참찬의정부사(證參贊議政 府事) 희상(熙祥)의 아들이다. 1365년(공민왕 14) 감시에 차석으 로 급제했고, 공민왕 17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 閱), 그 후 우정언(右正言), 우헌납(右獻納)에 올라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과 지윤(池奫)을 탄핵했다가 오히려 10년간 유배 당했다. 그 뒤 유배에서 풀려나와 내부부령(內附副令), 예문응교 (藝文應敎), 우상시(右常侍), 지신사(知申事)에 올라 감시를 담 당했으나 그 해에 장류(杖流)된 김진양사건에 연류되어 결성현 (충청도 홍주목 관내)에 다시 유배되었다. 그 후 조선 태조 7년 (1398) 이조전서(吏曹典書), 동지중추원 학사가 되었다. 1400년 (정종2)에는 첨서삼군부사로 전위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 며, 1402년(태종2)에 지의정부사에 올라 하륜과 같이 등극사(登 極使)로서 명나라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명에 다녀왔는 데 그 때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의 개사를 주청하여 그 공적으 로 토지와 노비를 받았으며 정헌대부가 되었다. 또한 당년에 지 의정부사로서 대사헌을 겸임했으며, 1403년 예문관 대제학이 되 었다. 그는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하륜 등과 함께 삼국사략(三國 史略)을 찬수(撰修)했으며 소설 저생전을 지었고 신증동국여지승 람, 동문선, 대동시선, 청장관전서 등 시 425수, 문 255편 등 총 680개의 문학작품이 현존한다. 유저로 쌍매당집이 있고 시호 는 문안(文安)이며 그의 묘소와 신도비가 당진군 송악면 오곡리 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