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 당제(黃島堂祭)
이 황도당제란 본군의 안면읍 황도리에서 매년 음력으로 정월 초
순에 거행되는 대동제를 말하는 것이다.
황도는 본래 섬이었는데 지난 1979년에 육지(창기리)와 연육교(連陸橋)가
가설되어 지금은 섬으로서의 실감이 나지 않지만,
매년 당제가 거행되고 있으므로 이곳의 지명을 붙여 편의 상 ''황도 당제''라
부르고 있다(실은 지명을 생략하고 당제라고 부르는 것이 예사이다).
이 황도리에는 큰 마을, 은거지, 집너머, 삶마곰 등 자연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민가 약 100여호에 인구 5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비교적 평화로운 마을이다.
그런데 이 황도리에서 거행되는 당제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믄 특이점이 있다.
즉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뱀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본래 당집 안에는 뱀의 그림 을 붙여놓고 이를 신봉했었는데,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에 마을의 일부 청년들이 미신 타파의 일환으로
이를 제거해 불태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뱀이 그려져 있는 부분은 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하게 나타나 마치 생동감을 느끼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괴이하게 생각하고 즉시 땅 속에 묻어 주었다는
사실이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황도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고 되었는지 그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주 정씨와 해주 오씨가 최초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황도리에 정착하게 된 정씨와 오씨는 서로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자기 씨족들이 한데 어울려 생활하면서 그 세력을 확산시켜 나갔던 것이다.
정씨는 큰 마을, 오씨는 은거지에 각각 당집을 짓고 매년 정초에 당제를
극진히 지내왔는데, 오씨 들의 가세가 점점 약화되어
마침내 그들의 당집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 때 오씨들은 문중 회의를 열고 합의한 끝에 당집을 다시 세우지 않고
정씨들의 당집에서 함께 당제를 지내기로 하였던 것이다.
현존하는 당집이 그동안 몇차례 중수는 하였지만
근원은 정씨들의당집이 되는 것이다.
이 당 집은 당산에 조영되었는데, 3,4평에 불과한 목조건물과
두평 미만의초라한 산신당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당집의 주위에는 수령(樹齡) 수 십년을 자랑하는 아름
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 이 당집의 역사를 실증해 주고 있다.
지금도 매년 정초에 이 당제가 거행되고 있으며,
그 순서는 다음 과 같다.
당제를 주관하는 제주를 달리 당주라 부르고 또
이 당주를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을 화주라 하는데,
이들은 주민들이 선출하는 것이다.
즉 당주는 음력 섣달 보름에 당제 준비를 위해 열리는 대동계에서 선출한다.
그러나 이 당주는 아무나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당주
자격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일단 선출된 당주는 여러 가지 금기사항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만약 금기 사항을 지키지 않고 부정한 자가 당주가 되어
이 당제를 주관하였을 때,당주는 물론 마을 주민들이 모두
신령의 화를입어 불행해진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주는 이 금기 사항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특히 당주는 당제를 무사히 끝낸 뒤에도 다음해의 당주가 선정되기
전에는 역시 금기를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이
이 황도 당제의 특징이기도 하다.
당제를 마친 당주가 1년동안 온갖 부정한 것을 보아서도 안되며
또한 행하여도 안됨은 물론, 심지어 자기 집의 제사에도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문 위에 금줄을 달아 부정한 외래 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동시에,
본인도 가능한 한 외출을 삼가야 하는 등 어려움이 뒤따랐기 때문에,
이 당주를 선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황도의 당제가 지금도 그 명맥이 이어져 여전히 거행되고 있지만,
본래의 절차에 따라 엄격히 거행되지 않는 것 같다.
해방 전까지는 당제 의식이 아주 성대하게 거행되어 이미 정월
초이튿날 아침이면 당주, 화주, 집사자들이 모두 당집에 올라가
준비한 제물을 정성들여 진설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물을 진설하고 나면 자정에 이르게 되는데, 실은 이 때부터
당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선 강신무에 의해 신령의 초청이 끝나면 곧 이어 당주에 의해
술잔을 올리고 재배를 하는 절차 등으로 당제가 끝나는 것이다.
이렇게 당제의 의식 절차가 끝나는 동시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10여 명의 무격(巫覡) 들이 굿을 시작하는 것이다.
10여 명의 무격들이 모여 굿을 하게되므로 대성황을 이루게 되는데,
이 때는 마을 주민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거도적(擧島的)으로
모두 참가하여 축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간다.
무격들의 열두거리굿을 다 마치는 등 설레이다 보면 4일 간의 축제가
끝나게 되는 것이다이같이 4일간의 축제가 끝나면 마지막
절차로 산신당에 가서 산신제를 간략하게 지내고 모두 끝낸다.
지금도 이 당제는 주민들에 의해 여전히 거행되고 있지만,
본래의 당제와는 거리가 먼 형식만으로 그치고 마는 것같다.
즉 정월 초이튿날 저녁에 당주와 집사자가 당집에 올라가 제물을
진설하여 놓고 자정 무렵에 제의를 마친다.
그리고 새벽녘에 산신제를 지내고 하산함으로써
당제가 모두 끝나는 것이다.
이 당제가 과학의 문명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어떠한 것을
시사(示唆) 하여 주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좌우간 우리 민속의 뿌리가 시들지 않고 오늘에까지
뻗어 내려오고 있 다 는 점에 큰 의의를 느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본래 황도당집에는 뱀신을 모셨으나, 앞에서 말한대로 소실되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임 경업 장군이 어로신으로 등장하면서부터
이 곳 황도당집에서도 임경업 장군 신을 모시게 된 것이다.
황도당집에는 12신장을 비롯하여 성주, 3불, 장군신을 모시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임경업 장군이 주신(主神)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