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면] 철마산의 장사 조주남
소원면에서 제일 큰 산이 무슨 산이냐 한다면 『철마산』이라고
모두 대답하리라.
지금은 산림이 그리 울창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들어차 명산의 면모를 과시했던 모양이다. 이 철마산 등성이에
지금도 사찰의 터가 남아있는데 주춧돌로 사용됐던 돌이 거짓말
조금 보태어 집채만한 것이 있으니 그 당시 사람들의 재주 좋음
을 잠작케 한다. 철마산 근처에는 『조주남』이라는 힘이 황소같
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조주남이가 천하에 장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
이 아니었다. 원래 주남이는 무식한데다가 미련하고 힘도 없는
그런 위인이었다.
한마디로 반편 비슷한 저능아였다.
그런 사람이니 자연히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아무리 저능아라 해도 그런 환경에 있었으니 주남이는 늘 외롭
고 고독했다. 그런 주남이가 어느 날, 철마산으로 나무를 하러
올라갔다.
때는 따뜻한 봄날이라 산에는 기화요초들이 맵시를 뽐내고 있었
다. 주남이는 지게를 벗어놓고 양지바른 곳에 앉아 해바라지를
하고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도사 한 사람이 나타났다. “네 이름
이 주남이지?” “그렇습니다만…….” 주남이가 주저주저하고
있는데 도사가 다시 말을 건네왔다. “내가, 네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어떠냐?” 주남이는 뜻하지 않은 도사의 말에 반신반의
하며 되물었다.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무슨 선물을 주
시겠다는 겁니까?” 주남이의 물음에 도사는 껄껄 웃고는 대답했
다. “나는 이 철마산의 산신령이다.
그리고 네게 주고 싶은 선물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지혜이고, 하
나는 힘이다.
이중에 네가 원하는 것을 줄터이니 말해보아라.” 이 소리에 주
남이는 문득, 힘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친구들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당할 때마다 친구들을 힘으
로라도 제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힘을 주십시
요!” 그러자 산신령은 주남의 뺨을 세번이나 세차게 때리고는
홀연히 사라지는게 아닌가. “아야!” 주남이는 산신령이 때리
는 뺨이 몹시 아파 그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허-참, 별 꿈
도 다 있네!” 주남은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 나무를 하기 시작했
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갑자기 힘이 솟아나며 나무를 하는
낫자루가 쑥 빠지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소나무 한 그루를 뽑아보니 소나무도 쉽게 뽑혔다.
힘이 천하장사 부럽지 않을 만큼 뻗쳐 오르고 있었다. “그렇다
면 산신령이 내게 힘을 준 것이로구나!” 주남은 이 신기한 일
에 스스로 놀라면서 순식간에 집채만한 나뭇짐을 지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주남이는 힘이 센 대신 무지와 미련은 더해
만 갔다. 어느 여름, 그 날은 몹시 무더운 날이었다.
주남은 소원에서 태안까지 소금을 운반하기 위하여 한꺼번에 소
금 여나믄 가마니를 짊어지고 『한티재』라는 산길을 오르고 있
었다.
이마에는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었고 숨은 턱에 닿았다.
지나가던 사람이 보다 못해 말했다. “여보게, 주남이.
좀 쉬어가게.” 그제서야 주남이는 지게를 받쳐놓고 땀을 닦았
다.
그리고 얼마를 쉬고는 다시 소금 가마니를 지고 한티재를 넘어
태안쪽으로 갔다.
그런데 얼마쯤 가니까 또 힘이 들고 더워 쉬고 싶은 생각이 들었
다. “다시 쉬어가야지.” 이렇게 생각한 주남이는 오던 길을 되
돌아 다시 한티재로 가더니 조금 전에 쉬었던 그 자리에 지게를
받쳐놓고 쉬는 것이 아닌가? 동네 사람이 이 모양을 보고는 “이
사람 주남이, 왜 되돌아 왔나?” 하고 물으니 주남이는 천연덕스
럽게, “쉬어갈려구요.” 하는 것이었다.
주남이 생각은 쉬는 곳이 이 곳뿐인 줄 안 모양이다. 미련의 소
치였다. 그러나 그 미련한 힘은 공익을 위하여 크게 쓰여지기도
했다.
철마산에는 절터가 있다.
그 사찰을 건축할 때 주남은 다른 사람보다 백배나 더 많은 일
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주남이가 운반했다는 주춧돌은 그야말로 집채만 했다. 주
남이 장정이 되어 그 힘도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런
때, 태안 장터에는 불량배 중(스님)이 장사꾼들을 몹시 괴롭히
고 있었다. 장날마다 나타나서 돈을 빼앗는데, 누구하나 그 중
을 상대로 싸움을 할 수 없었다.
중의 힘은 주남이 못지 않았으며, 그 성품까지 포악하여 눈뜨고
돈을 빼앗기면서도, 누구나 항의 한 번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내가 그놈의 땡중을 혼내어 버릇을 고쳐 놀테다!” 주남은 어
느 태안장날, 거나하게 술을 먹고는 땡중과 마주 섰다. “선량
한 주민들을 괴롭히는 땡중아! 혼좀 나 봐라.” 그러나 중도 호
락호락하지 않았다.
어울려 싸움이 시작됐으나 승부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싸움이 해가 중천에 이르도록 결판이 나지 않았
다.
두사람 모두 지쳐 있었고, 보는 사람들의 등에서도 땀이 흘렀다.
사람들은 주남이가 이겨주기를 마음 속으로 빌고 있었다. 이윽
고 주남이가 마지막 힘을 쓰는듯, 황소울음 같은 소리를 지르는
가 했더니, 가짜 중을 번쩍 들어 저만치 내동댕이 쳤다. 주남이
가 이긴 것이었다.
그러나 힘을 너무 쓴 주남이도 그 자리에 텁석 주저앉고 말았
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변인가! 주남이 주저앉은 자리에는 쇠말뚝
이 있었는데, 주남이가 그 쇠말뚝에 항문을 찔리고 만 것이었다.
항문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결국 가짜중과 주남이의 싸움은 두 사람이 모두 죽으므로써 판가
름이 나고 만 것이었다. 지금도 철마산에는 옛날 주남이가 옮겼
다는 주춧돌이 남아 있는데, 무지막지한 힘보다는 지혜가 인간에
게 더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겨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