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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문화원

 
[원북면] 선녀가 살던 장구섬 게시판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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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원북면] 선녀가 살던 장구섬
작성자 태안문화원 등록일 2016-06-15 조회 674
첨부  
 

[원북면] 선녀가 살던 장구섬

이 장구섬(長鼓島)은 원북면 방갈리 2구에 있는 자연 부락 이름
이다. 갈머리 버스 종점에서 동남쪽으로 약 1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바닷가에 인접한 조그마한 동네인데, 이 곳에서 장구섬을
비롯하여 소리섬, 거문고섬(거문부리), 그리고 육굴 등으로 연결
되고 있다. 이 마을은 아담하고 평화스로운 곳이다.

그런데 현재는 이 장구섬에만 몇 채의 집이 있을 뿐 소리섬이나
거문고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또한 장구섬, 소리섬, 거
문고섬 등 이름에 모두 섬자가 붙어있기 때문에 현지에 가보지
않고는 누구나 섬으로 착각하기 쉽다. 옛날 선녀들이 살았을 때
는 섬이었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모두 육지로 되어 있다.

옛날에 지각 변동으로 인하여 본래 섬이었던 것이 육지로 연륙되
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옛날에는 이 장구섬에 선녀들이 살았
다 한다. 옛날, 하늘 나라에 옥황상제가 살고 있었는데, 이 옥황
상제는 측근에 많은 선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선녀중에서도 세 선녀를 특히 귀여워 했다.

이 세선녀를 귀여워한 것은 이들이 제각기 색다른 특기를 가지
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아껴 주었던 것이다. 이들 중 한사람은
장구를 잘 쳤고, 또 한 사람은 거문고를 잘 탔으며, 그리고 마지
막 한 사람은 소리(노래)를 잘 하였기 때문에 궁중의 분위기가
항상 화기애애 하였으며, 동료간에도 화합이 잘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선녀들은 남달리 뛰어난 기능을 가졌다해서 특별
히 옥항상제로부터 총애를 받게 되자 태도가 오만해지고 게으름
을 피우기 시작했다. 옥황상제는 이같은 태도가 매우 불쾌하여
세 선녀를 불러 놓고 타일렀다.

이러한 타이름을 받고도 세 선녀는 조금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
이 오히려 언행이 더욱 방자해졌으며, 이에 따라 동료간에 위화
감이 조성되고 질서도 문란해졌다. 옥황상제는 이같은 실태를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어 마침내 세 선녀를 지상으로 추방하였
다. 이렇게 추방을 당한 선녀들은 지상에서 안주할 곳을 찾다가
마침내 내해의 조용한 섬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 선녀가 이 섬으로 내려와 보니 주변에 또 다른 조그마한 섬들
이 있었다.

선녀들은 의논끝에 드디어 각각 하나의 섬을 차지하고 살면서 자
주 왕래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세 선녀들이 각각 떨어져 살면서 지난 날 하늘 나라에서
저질렀던 일을 반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추방전에 반성을 하고 용서를 받았어야 했는데, 추방후에 반성한
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하늘나라에서 화려한 생활을 누리다
가, 어느날 갑자기 지상의 황폐한 무인 고도에 내려와 산다는 것
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미쳐 몰랐던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였으리라.

『무인 고도에 귀양을 와서 지난날의 화려했던 왕궁의 꿈을 더듬
으며 눈물 짓는 공주의 심정과 같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황폐한 섬에서 그것도 세 선녀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떨어져서 외로움을 달래가며 여러
해를 살아오고 있었으나 더 이상 버티어 낼 수가 없게 되자 결
국 한 섬에 모여 같이 살아가기로 결정 하였다. 이들은 한 섬에
같이 살면서 수년동안 한결같이 진심으로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
치면서 용서를 빌었다.

드디어 이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 즉 『지성이면 감천』이라
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져, 옥황상제께서 이 세 선녀를 용서하고
다시 하늘 나라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한다. 이 같은 일이 있는
뒤에 마을 사람들은 장구를 잘 치던 선녀가 살던 섬을 장구섬,
거문고를 잘 타던 선녀가 살던 섬을 거문고섬, 그리고 소리(노
래)를 잘 하던 선녀가 살던 섬을 소리섬이라 이름하였다하는데
오늘날 까지 전래되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