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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학선구자 장영실 게시판 상세보기

[온양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조선시대 과학선구자 장영실
작성자 온양문화원 등록일 2007-06-11 조회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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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은 조선 전기 세종 때의 과학자로 본관은 아산이며 기녀 소생으로 동래현의 관노 출신이다. 과학적 재능이 있어 제련 ·축성 ·농기구 ·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나서 1423(세종 5) 왕의 특명으로 발탁, 상의원 별좌가 되면서 노예의 신분을 벗었다. 행사 직이 되고 1432 중추원사 이천을 도와 간의대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의 제작을 감독하였다. 1433 호군에 오르고 혼천의 제작에 착수하여 1 만에 완성하고 이듬해 동활자인 경자자의 결함을 보완한 금속활자 갑인자의 주조를 지휘 감독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물시계인 보루각의 자격루(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만들었다

 

1437년부터 6 동안 천체관측용 소간의,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고정된 정남일구, 앙부일구(시간과함께 남북의 방위도 알려주는 해시계), 밤낮으로 시간을 잴수 있도록 만든 천문 관측 기구인 일성정시의, 해의 그림자에 따라 절기를 알수 있도록 만든 규표(圭表), 자격루의 일종인 흠경각의 옥루(자격루와 혼천의를 합하여 해와 달의 움직임과 , 분을 나타내게 만든 기구) 제작 완성하고 경상도 채방별감이 되어서 구리 ·철의 채광 ·제련을 감독하였다

 

1441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비가 와서 하천에 물이 늘어난 높이를 재는 기구로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양수표(量水標) 똑같은 방식)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있게 했다. 공으로 상호군에 특진되었으나 세종 재위 24(서기 1442) 그가 감독하여 제작한 어가(御駕) 세종이 사용하다가 부서지는 사고가 일어나 불경죄로 의금부에 투옥, 장형을 받은 뒤에 파면당했다

 

그는 천한 노비 출신이었지만, 자신이 있는 일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리하여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정점까지 오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