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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육 게시판 상세보기

[온양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김 육
작성자 온양문화원 등록일 2007-05-31 조회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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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년(선조 13년) 서울 서부 마포리(마포리)의 외가에서 출생
1588년(선조 21년, 9세) 강동에가서 지산조호익의 가르침을 받음
1592년(선조 25년, 13세) 임진왜란이 일어나 피난하다.
1594년(선조 27년, 15세) 해주에 가서 우계 성혼(牛溪 成渾)의 가르침을
 받음. 부친상을 당함.
1600년(선조 33년, 21세) 모친상을 당함.
1604년(선조 37년, 25세) 진사 윤급(尹汲)의 따님과 결혼하다.
1605년(선조 38년, 26세) 사마회시(司馬會試)와 관시(館試)에 합격.
1610년(광해군 2년, 31세) 태학생으로서 소(疏)를 올려 종사오현을 청하다.
1611년(광해군 3년, 32세) 태학재임으로서 정인홍의 유적(儒籍) 삭제에 앞장섬.
1613년(광해군 5년, 34세) 경기도 가평 잠곡(潛谷) 청덕동(淸德洞)에
거처를 정함
1614년(광해군 6년, 35세) 관직의 뜻을 버리고 가족을 이끌고 잠곡에
들어옴
1623년(44세) 인조반정(仁祖反正)광해군 시절에 등용되지 못한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아 의금부도사로 발탁되었다가 한달만에 파직당함.
1624년(인조 2년, 45세) 이괄의 난에 왕을 수행한 공로로 음성 현감에
임명.
회시(會試)에 합격하고 전시(殿試)에 장원, 사간원의 정언으로 임명되다.
(그 이래 관직의 이동이 빈번하여, 상대적으로 중요한 관직이동만을 기록)
1625년(인조 3년, 46세) 병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兵曹佐郞兼 春秋館記事官),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
1626년(인조 4년, 47세) 병조정랑 겸 호패청낭청(兵曹正郞兼號牌廳郎廳)
등을 역임.
1627년(인조 5년, 48세) 호패(號牌)의 폐지를청하는 상소를 올림
1628년(인조 6년, 49세) 이조정랑(吏曹銓郞) 직무 수행의 과오로 문외출송(門外黜送)을 당함.
1631년(인조 9년, 52세) 용서를 받다.
1632년(인조 10년, 53세) 홍문관부응교(弘文館副應敎), 세자시강원보덕(世子侍講院補德) 등을 역임
1633년(인조 11년, 54세) 9월에 안변도호부사가 되고 1636년 정월에
임기가 만료되어 서울로 옴.
1636년(인조14년, 57세) 동지성절추진하사로 임명 7월 명나라 수도로 감.
1637년(인조15년, 58세) 병자호란이 일어난 사실을 알고 귀국
1638년(인조16년, 59세) 충청도관찰사로 임명, 다음에 8월에 조정으로
돌아옴. 대동법의 시행을 건의
<구황촬요급벽온방>을 간행하고 수차를 제조
1640년(인조18년, 61세) 우승지(右承旨)등을 역임.
<황명기략>을 저술.
1642년(인조20년, 63세) 사간원대사간등을 역임하다
<유원총보>를 저술하기 시작.
1643년(인조21년, 64세)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도승지(都承旨),
원손보양관 등을 역임
12월에 원손을 모시고 청나라 심양으로 출발하고 다음해 8월에 복명.
1644년(인조22년, 65세) 서로(西路)에 수레와 동전의 사용을건의
형조판서에 임명.
1645년(인조23년, 66세) 사헌부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역임.
1646년(인조24년, 67세) 사은부사로서 북경에 다녀옴.
임경업을 청나라로부터 압송하던 중의 잘못으로 파직.
1647년(인조25년, 68세) 개성유수로 임명되고, 2년후 임기 만료
1649년(효종 즉위년, 70세) 인조가 승하하여 임시로 예조판서를
맡으면서 국정도감제조를 겸함.
1649년(효종 원년, 70세) 우의정에 임명.
1650년(효종 2년, 72세) 진향사로 북경에 다녀옴.평안,황해도에
동전 유통을 시도.
1651년(효종 2년, 72세) 영의정에 오름.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
인조실록의 총재관으로 임명.
차남 우명의 차녀가 왕세자빈이 됨.
1652년(효종 3년, 73세) 해동명신록을 편찬하기 시작.
1653년(효종 4년, 74세) 시헌력을 시행.
1656년(효종 7년, 77세) 동전유통책이 중단.
1657년(효종 8년, 78세) 전라도에 대동법의 시행을 건의, 추진
1658년(효종 9년, 79세) 전라도 연해읍에 대동법이 시행.
서울 남부 회현방의 자택에서 돌아가심.
1659년(효조 10년) 충청도의 사민이 대동선혜비를 세움.
1660년(현종원년) 김육에게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