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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면 양화리의 지명유래 게시판 상세보기

[공주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계룡면 양화리의 지명유래
작성자 공주문화원 등록일 2001-11-23 조회 1641
첨부 gif 공주문화원.gif

지 명 : 금곡, 쇠실〔마을〕 

내 용 : [위치] 양화동에서 북쪽 골짜기. 
[유래] 
鐵鑛山이 있었던 마을이며 쇠가 나온다는 마을이라 쇠실 또는 
금곡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밖쇠실과 안쇠실로 나뉘는데 밖쇠실 
은 남성을 상징하고 안쇠실은 여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지 명 : 금골, 증골〔골〕 
내 용 : [위치] 금곡 북쪽 골짜기 
[유래] 
보목에 속하는 것으로 옹기 만드는 곳이 있어서 증골이라고도 
한다. 


지 명 : 금룡암〔암자〕 
내 용 : [위치] 자작골 북동쪽 
[유래1] 
계룡산이 파여 물이 고였는데 그 곳에서 금색 용이 나왔다고 
하여 금룡암이라 한다. 


지 명 : 능산(陵山)〔산·마을〕 
내 용 : [위치] 용강내 북쪽. 
[유래1] 
마을에 박씨의 무덤이 있어서 능산이라고 하며 그 곳에 왕이 
살면 능(陵)이 될 것이라고 해서 능산이라고도 한다. 

[유래2] 
산이 능을 만들기에 명당자리라 하는데 계룡에 도읍하게 되면 
첫 왕의 능이 세워질 산이라 하여 능산이라 부른다 한다. 그 아 
래에 마을이 있는데 여기 마을 지명도 산명에 따라 능산이라 부 
른다 


지 명 : 대추골〔골〕 
내 용 : [위치] 신원사 뒤. 
[유래] 
배가 넘어다니면서 대추를 흘리고 다닌다고 하여 대추골이라 
고 하였다. 큰 대추골과 작은대추골이 있다. 


지 명 : 도선비(道銑碑)〔비〕 
내 용 : [위치] 양화리 신원사. 
[유래] 
도선은 신라 말엽의 중으로 성은 김씨이고 靈岩 출신이었다. 
15세에 중이 되어 月遊山, 華嚴寺에서 대장경을 공부하여 바로 
대의에 통해서 많은 佛導使들이 신처럼 추앙하였다. 그는 銅裏 
山(동리산)에서 惠澈大師를 찾아 無說說 또는 無法法을 배워 크 
게 깨닫고 23세에 穿道寺(천도사)에서 具戒를 받았다. 그는 雲峰 
山에다 굴을 파고 불도를 닦으며 태백산 앞에 움막을 치고 여름 
을 보내면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白鷄山(백계산)의 옥룡사 
에 자리잡고 거기서 생을 마칠 뜻으로 말없이 수양하였는데 헌 
강왕이 그의 명성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궁중으로 모셔갔으나 얼 
마 안 가서 다시 산으로 돌아왔다. 그의 陰陽地理說과 風水相地 
法은 고려. 조선시대를 통하여 크게 영향을 준 학설이다. 그의 
비석이 신원사 경내에 있는 것은 그가 불도를 닦을 때 신원사에 
들렀으므로 명승이 찾아온 기록을 남기고자 후대에 세운 듯하 
다. 신원사 경내에 있었던 비석이 부근의 田泉에 뒹굴고 있었 
다 하는데 신원사가 화를 당했을 때 여기에 버려져 매몰되어 있 
다고 전해진다. 


지 명 : 되말이, 용강내〔마을〕 
내 용 : [위치] 양화 2구. 
[유래] 
되, 말하며 곡식을 잰다고 해서 앞으로 부흥한다고 하는 의미 
가 있다. 


지 명 : 등운암(騰雲庵)〔사찰〕 
내 용 : [위치] 신원사 동북쪽 연천봉. 
[유래] 
신라 문무왕 5년(665)에 등운대사가 창건을 한 절인데 李太祖 
(李成桂)가 중건하였다 한다. 계룡산에 정씨가 도읍한다는 설 
에 왕기를 누른다는 뜻으로 이태조가 중건을 하고 壓鄭寺(압정 
사)라 불렀었는데 그 후에 春波가 중건한 암자다. 


지 명 : 배바위〔바위〕 
내 용 : [위치] 연천봉과 연예골 중간. 
[유래] 
물이 불어 배를 그 곳에 매어 놓았다고 해서 배바위라고 하는 
데, 배바위까지 물이 차서 바위가 뜨면 세상 일을 다 알 수 있다 
고 한다. 


지 명 : 별당마루〔마을〕 
내 용 : [위치] 신원사 옆 
[유래] 
그 곳에 창고를 지어 곡식을 저장했다고 해서 별당마루라 한 
다. 


지 명 : 보목〔마을〕 
내 용 : [위치] 문산 북서쪽 위 
[유래] 
마을에 보가 있어서 보목이라고 하며, 또는 마을 모양이 범(호 
랑이)의 목모양이어서 범목이었는데 일제 이후 보목으로 바뀌었 
다는 설도 있다. 


지 명 : 복항(洑項), 보목〔마을〕 
내 용 : [위치] 송현 남쪽. 
[유래] 
붓돌의 목이 되는 자리에 마을이 있다 해서 보항 또는 보목이 
라 부르는 마을이다. 


지 명 : 사련봉(四連峯)〔산〕 
내 용 : [위치] 신원사 뒤. 
[유래] 
계룡산의 네 봉우리가 변하여 있다 해서 사련봉이라 부르는 산 
이다. 지금은 문필봉이라 부르는 산이다. 


지 명 : 새터〔마을〕 
내 용 : [위치] 양화 저수지 서쪽. 
[유래] 
원래의 새터는 양화 저수지가 생기면서 침수되었고 그 마을이 
옆으로 이주해 새로 터를 잡았다 하여 새터라 한다. 


지 명 : 송현(松峴)〔마을〕 
내 용 : [위치] 양화동 북쪽. 
[유래] 
소나무가 무성해서 마을이 소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한다. 소나무가 많고 소나무가 운치를 돕는 마을이라 해서 송 
현 또는 송현리라 부른다. 


지 명 : 신도비〔비석〕 
내 용 : [위치] 양화교 북쪽. 
[유래] 
순천 박씨들이 공적비로 세웠다고 한다. 


지 명 : 신원사(新元寺)〔사찰〕 
내 용 : [위치] 계룡산 남쪽 기슭. 
[유래] 
백제 의자왕 11년(651) 3월에 涅槃宗關祖 普德和尙이 창건하 
였는데 고려 성종 때 如哲和尙이 대웅전을 중수하고 충열왕 24 
년(1298)에 浮庵和尙이 중건하고 조선시대 태조 3년(1394)에 無 
學大師가 중수하였으며, 고종 13년(1876)에 普連和尙이 중수하 
고 1946년에 滿虛가 중수하였다. 신원사엔 여래사리탑과 부도 
자리가 여덟이 있고 古王庵, 馬鳴庵, 南庵, 騰雲庵이 딸려있고 
隱庵과 珠溪가 있어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신원사 아래에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신원사골 또는 신원사동이라고 부른다. 


지 명 : 신원사옆 토굴〔굴〕 
내 용 : [위치] 신원사 옆. 
[유래] 
나라의 죄인들을 데려와 제사를 지낸 후 죄인들을 가두어 놓았 
다는 굴이다. 


지 명 : 쌀개봉〔산〕 
내 용 : [위치] 계룡산 봉우리. 
[유래] 
산봉우리가 두 개인데 그 모양이 쌀을 빻는 방아처럼 생겼다 
고 하여 쌀개봉이라 한다. 


지 명 : 양화동(陽化洞)〔마을〕 
내 용 : [위치] 쇠실에서 남쪽. 
[유래] 
양화산성 아래에 마을이 있다 해서 양화동이라 부르는 마을이 
다. 


지 명 : 용강내〔내〕 
내 용 : [위치] 양화 2구 새마을 회관 앞. 
[유래] 
용이 나와서 용강내라고 한다. 


지 명 : 은장골〔골〕 
내 용 : [위치] 고왕암 동쪽. 
[유래] 
장수가 숨었다고 하여 은장골이라고 한다. 


지 명 : 중악단(中岳壇)〔사당〕 
내 용 : [위치] 신원사 동북쪽에 있는 사당. 
[유래] 
계룡산을 제사 지내는 단(壇)을 말한다. 신라 때에는 계룡산 
을 五岳 가운데 中岳이라 하고 이곳에 中祀禮로 제사를 지내고 
조선시대에서는 춘추로 제사를 지내 왔었다. 靈山인 계룡산의 
제사라 그 제식이 웅장하였다 하는데 지금은 스님들이 香奠(향 
전)을 올릴 뿐이며 집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 명 : 태조대왕기도굴〔굴〕 
내 용 : [위치] 사현봉. 
[유래] 
이태조가 이곳에서 계룡산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하여 태조대왕 

기도굴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