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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정씨의 시조 정신보(鄭臣保)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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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산 정씨의 시조 정신보(鄭臣保)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792
첨부  

 

서산 정씨(瑞山鄭氏)의 시조(始祖)는 송(宋)나라에서 원외랑(員
外郞)을 지낸 정신보(鄭臣保)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원
래 중국(中國) 절강(浙江) 사람으로 증조부(曾祖父)인 응충(應
庶)이 송(宋)나라에서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를, 아버지인 수거
(秀거)는 원외랑(員外郞)을 지냈다 한다.
송(宋)나라가 망(亡)하자 신보(臣保)가 바다를 건너 고려로 망
명(亡命)하여 서산(瑞山)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게 된 것이 서
산 정씨의 시초이다.
신보(臣保)의 아들 인경(仁卿)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대장
군(大將軍)·상장군(上將軍)·서경유수(西京留守)·첨의중찬(僉議中
贊) 등을 지내며 나라에 공을 세워 1274년(원종 15) 이등공신(二
等功臣)에 올랐으며, 그의 고향인 부성현(富城縣)이 서주군(瑞州
郡)으로 승격되었으므로 후손들은 시조(始祖)의 정착 세거지(定
着世居地)인 서산(瑞山)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
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인경(仁卿)의 아들 4형제가
모두 관직에 올라 크게 현달하였는데, 그중 장남 신유(信柔)가
상서(尙書)를 지냈고, 차남 신화(信和)는 중랑장(中郞將)을 역임
하여 전의령(典醫令)을 역임한 동생 신영(信英)과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조선조(朝鮮朝)에서는 인경(仁卿)의 8세손 희(僖)가 김종직(金
宗直)에게서 글을 배워 연산군(燕山君) 때 과거에 급제하여 현감
(縣監)을 지냈으며, 그의 증손(曾孫) 인홍(仁弘)은 조 식(曺 植)
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義兵)
을 모집하여 항전(抗戰)하였는데, 류성룡(柳成龍)이 실각되자 정
권(政權)을 장악하여 대사헌(大司憲), 우·좌의정(右·左議政)을
거쳐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그 외 군자감(軍資監)을 역임한 근승(瑾昇)과 판관(判官)을 지
낸 사용(士鎔)이 뛰어났고, 의열(義烈)은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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