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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柳淑)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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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숙(柳淑)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6-04-27 조회 785
첨부
유숙(1316-1368)은 고려 공민왕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서령 자는 순부(純夫), 호는 사암(思菴)이다. 1340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안동사록(安東司祿)이 되었으며 대군시절의 공민왕을 시종하여 4년간 원나라에 머물렀었다.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함께 고려에 돌아와 좌부대언(左副代言)이 되고 이듬해에는 연경에서 왕을 보좌한 공으로 연저수종(燕邸隨從) 1등공신의 호를 받았다.
이어 우대언, 좌사의 대부(左司議大夫)를 역임하다가 조일신의 무고로 파직 당하여 향리로 돌아왔다. 조일신이 죽은 뒤에 다시 기용되어 1356년에 추밀원 학사(樞密院學士)가 되었다.
그후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使)에 임명되었고 1359년에는 지추밀원사로 기철일파를 제거하는데 세운 공로로 안사공신(安社功臣)이 되어 추밀원사에 까지 이르렀다. 이해 겨울 홍건적이 침입하자 왕에게 권하여 남행하게 하였고 이어 한림학사 승지수국사를 역임하였으나 안우등의 위협으로 동경유수로 나가기도 하였다.
1363년 홍건적의 난 때의 공으로 서령군(瑞寧君)에 봉해졌다. 같은 해 기용(金鏞)이 변란을 이르켰을 때 공을 세워 감찰대부가 되어 1등 공신에 책록 되었으며 예문관 대제학 지춘추관사에 올랐다.
1365년 신돈(辛旽)의 모함으로 영광에 유배되었으며 그래도 못미더워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공민왕의 묘정과 서산시 성암서원에도 배향되었고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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