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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욱(金弘郁)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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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홍욱(金弘郁)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6-04-27 조회 905
첨부

 

김홍욱(1602-1654)의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이다.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아버지는 찰방(察訪), 적(積)이다. 1635년 중광문과에 급제하였고 이듬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임금을 호종, 청에대한 강경론을 주장하였고 당진현감으로 있을 때는 감사와 뜻이 맞지않아 사직하기도 하였다. 1646년 이조좌랑이 되었으나 권신 김자점과 불화로 사직하였다.
1648년에는 관기(官紀), 전제(田制), 공물(貢物), 방납(防納) 등 시폐 15개조를 상소하였다. 효종즉위 이후 집의 승지를 거쳐 충청도에 대동법을 처음 실시하는데 적임자로 지목되어 충청도 관찰사가 되였다. 1654년 황해도 관찰사로 전임하였는데 흉년이 들어 효종이 원인을 묻는 구언교(求言敎)를 내리자 8년 전 사사(賜死)된 강씨(소현세자 빈)의 억울함을 말하고 그 원을 풀어줄 것을 상소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종통(宗統)에 관한 문제로 효종의 왕위보전과도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바 있던 일을 다시 거론하자 효종이 격노하여 친국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고 결국 장살(杖殺) 당했다.
그 후 1718년에 민진후의 주청으로 이조판서로 증직되고 문정공(文靖公) 시호를 받았다.
성암서원에 제향되고 문집으로는 학주집(鶴洲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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