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팔봉면 양길리(陽吉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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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산문화원 | 등록일 | 2002-05-30 | 조회 | 10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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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리(陽吉里)라는 이름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부터 생긴 지명 이다. 4∼50년전만 하더라도 뱅길이(方吉里)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뱅길이(方吉里)에는 장(場)이 섰었기 때문에 팔봉, 성 연, 지곡등 인근에서는 이 장(場)을 많이 이용했던 것이다. 뱅길이장(方吉里場)은 평상시에는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지만 장날이면 수십명의 보부상(褓負商)들이 이곳을 찾아들어 성시(盛 市)를 이루던 곳이다. 구한말( 韓末)인 1895(고종32)년의 행정구역 개편전까지 조선 시대(朝鮮時代)에는 문현면 방길이(文峴面 方吉里)라는 이름으로 75호가 넘는 비교적 큰 마을이었던 것을 이 때에 방길리(方吉 里) 우길리(牛吉里) 사양리(斜陽里)로 분할되었다가 1914년에 다 시 방길리(方吉里) 우길리(牛吉里) 일부를 합쳐서 사양리(斜陽 里)에서 양(陽)자를 따고 뱅길리(方吉里)에서 길(吉)자를 따서 양길리(陽吉里)라는 지명이 생긴 것이다. 양길리(陽吉里)는 지리적 중심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옛부터 자 연스레 시장(市場)이 섰었고 1919년에는 팔봉초등학교가 생길 때 면소재지가 아니었음에도 이 마을에 세웠었다. 양길리(陽吉里)는 팔봉산(八峯山)의 가장 높은 봉우리(361m) 의 북편에 자리잡아 있어 마을이 웅휘(雄揮)한 감이 드는 마을이 다. 이 마을에는 15대 가까이 세거해오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전주리씨(全州李氏) 남원양씨(南原梁氏)등이 집성(集姓)을 이루 어 살아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안씨(安氏)만은 뱅길이 안씨(方 吉里 安氏)라 불렀었다. 양길리(陽吉里)에는 사양동(斜陽洞) 뱅길이(方吉里) 우길리(牛 吉里)라는 자연부락과 와촌, 가래기, 오류동, 한재밑, 옺 나무 골, 빗돌머리, 산밑, 양지편, 벌말, 벽지, 되청말, 밤골등의 소 지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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