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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암면 성암리(星巖里)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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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음암면 성암리(星巖里)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2-05-14 조회 1629
첨부  

성암리(星巖里)는 조선시대에 홍주목 운천면 모산리(洪州牧 雲
川面 母山里)로 홍주목의 1)월경처(越境處)였다. 구한말인 1895
년 행정구역개편때 홍주목 관활에서 해미군(海美郡)소속으로 바
뀌면서 마을도 모산리(母山里) 단일동리에서 장산리(長山里) 모
산리(母山里) 성암리(星巖里)등 세 마을로 분활된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해미군이 없어져 서산
군 으로 통합 되면서 운천면도 없어질때 운천면 소속의 11개 마
을은 모두 운산면(雲山面)소속으로 되고 성암리(星巖里)는 음암
면(音岩面)소속이 되는데 일부가 분할 부장리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성암리(星巖里)란 지명은 106년의 오래지 않은 역사의
지명이다. 성암(星巖)이란 이름은 마을내에 있는 북극성(北極星)
을 비롯하여 북두칠성(北斗七星)이란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있었
기에 이 별바위(星巖) 또는 별바위 마을이라 불리워 진데서 연유
된 것이다.
이 별바위들은 주로 성암리(星巖里) 1반 마을인 별칭 미륵댕이
마을 100m 내에 근거리에 북두칠성처럼 산포(散布)되어 있었는
데 4개는 논 가운데 위치해 있어 영농에 지장을 준다고 90년 경
지정리때 중기로 파묻어 버렸고 한 개는 정문거리에 두 개는 최
동열가(崔東烈家) 좌편 산록에 있다.
북극성(北極星)또는 북바위라 불리는 별 바위는 높이 2m 직경
1m의 원형그대로 가장잘 보존되어 있는데 성암리 산 1의3번지 최
교준 소유산록에 위치해 있다.
이바위에 대하여 옛날 마을 사람들이 매년초에 풍요(豊饒)와 안
녕(安寧)을 기원하는 제(祭)를 올렸었는데 언제 부터인지 그런
행사는 끊어지고 전설로만 남아 내려 온다며 주민들은 아쉬워 했
다.
마을 이름으로 상징될만큼의 뜻이 있는 바위들이라면 이제라도
묻어버린 바위들도 찾아내어 원위치에 복원 시켜 지고 동제를 지
내든 전통문화의 중요한 맥도 이어졌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성암리(星巖里)는 면적이 1,409ha가구 65호에 인구 255명으로
음암면 전체를 대비할 때 3%내외의 작은 마을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마을이름이 내외에 널리 알려진 것은 48ha의 서산시 관내
에서는 몇두번째로 큰 농업용 저수지가 마을에 인접해 있어 저수
지 이름이 성암저수지라 명명된 때문이다. 그러나 성암저수지 자
체에는 인근마을의 토지가 들어 갔을뿐 성암리토지는한평의 땅
도 편입되지 않았다고 한다.
성암리(星巖里)에는 최대집성(集姓)으로 해주최씨(海州崔氏)가
있는데 많을 때는 50여호가 살았으나 이제는 모두 도시로 떠나
고 15호만 남았다고 한다. 이들 해주최씨(海州崔氏)는 150여년전
에 홍성군 구항면 공리(洪城郡 龜項面 公里)에서 최한종(崔漢宗)
이라는 분이 연사(連査)관계도 처음 이곳에 이주하면서 부터라
고 이곳출신이며 해주최씨인 최춘열(崔春烈)면장은 증언해 주었
다.
그러나 연사(連査)관계로 인간의 자연스런 접촉에서 이루워지
는 것으로 이 지역이 홍주목(洪州牧)관활의땅 이었으므로 갖게되
는 동질(同質性)에서 온 결과라 할 것이다.
서산군 관활이었던 현 당진군 정미면 대호지면민과는 같은 서산
군이었을때에 지곡, 대산, 성연면민들간에는 수없이 많은 혼인
관계가 있었으나 1957년 행정구역이 당진군 관활로 바뀌면서 급
격히 줄어든 것을 볼 때 해정구역 획정의 위력을 실감할 수가 있
다.
이제라도 성암리에는 옛 홍주군 소속이었을 때 서산군이나 해미
현의 관활이었던 다른 마을과 달리 있었던 특수한 풍습이나 지금
까지 전해오는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는 지혜도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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