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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면 용장리(龍獐里)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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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운산면 용장리(龍獐里)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2-05-14 조회 1384
첨부  

용장리(龍獐里)는 현 운산면 소재지로 일찍이 외부에 알려지기
는 "예미장벌"로 알려졌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해미현 이도면
장항리(海美縣二道面 長項里)를 비롯한 묵현리(墨峴里) 장평리
(場坪里) 숙용평리(宿龍坪里)등 4개리로 되어 있었는데 구한말
인 1895년의 행정구역 개편때에는 이지역이 해미군 2도면 숙용평
리(宿龍坪里) 용연리(龍淵里) 장항리(獐項里) 묵현리(墨峴里) 장
평리(場坪里) 미륵리(彌勒里) 중리(中里)등 3개리가 더 분활되
어 7개마을이 되더니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용
연리(龍淵里)에서 용(龍)자를 따고 장항리(獐項里)에서 장(獐)자
를 따서 용장리(龍獐里)가 되었다. 이러한 지명의 변화와 엄연
히 고유마을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지역이 인근에 위치한
마을명인 "예미"(여미 餘美의 방언)로 불리워 왔던데 대해서는
불가사의한 일로 생각될 것이다.
작은 의미의 지명으로 여미(餘美)란 조선시대와 구한말까지는
一도면 여미리(一道面 餘美里)요 1914년 이후로는 서산군 정미
면 여미리(瑞山郡 貞美面 餘美里)로 그후 다시 1957년에는 정미
면(貞美面)이 당진군(唐津郡)으로 이속되면서 당진땅이 되었다
가 1973년에 운산면(雲山面) 땅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용
장리(龍獐里)와 전연 관련이 없는 여미리(餘美里)의 이름을 차용
해서 불리워 온 것이다.
장터도 "예미장"이요 초등학교도 "예미학교"요 우체국도 "예미
우체국"이었다. 요새안목으로 본다면 가당찮은 지명으로 불리워
왔던 것처럼 보이지만 여미(餘美)란 이름은 지금처럼 작은 마을
의 이름이 아니다. 백제때는 여촌현(餘村縣)이요 신라때는 여읍
현(餘邑縣)이고 고려때는 여미현(餘美縣)으로 고쳐져서 지금 운
산면 일부와 정미면 대호지면 지방을 관활하는 현으로 한결같이
내려오드니 조선조 태종때에 지금의 해미면 지방의 정해현(貞海
縣)에 합쳐지면서 이름도 해미현(海美縣)으로 되는 바람에 왜소
한 마을명으로 남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운산면 소재지인 용장리 지방주민이 "예미"로 불리기를
고집했다면 주체성있는 자존심의 발로였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찌됐건 용장리(龍獐里)는 운산면(雲山面) 소재지 보다도 서산
지방에는 서산 해미장 다음으로 큰 "여미장터"로 유명하였던 곳
이다. 지금도 서산지방에서 시소재지를 다음으로 해미(海美)를
치는데 그다음으로 중요한 소도읍일뿐더러 관문(官門)으로 유명
하다. 용장리에는 용연(龍淵) 장평(場坪) 묵현(墨峴) 장항(獐
項) 미평(彌坪)중리(中里) 산수동(山水洞) 숙용평(宿龍坪)등의
자연마을이있고 말등바위(馬背山) 노루목(獐項) 말무덤보(馬墓
洑) 묵현백토광(墨峴白土鑛) 묵현탄광(墨峴炭鑛) 삼거리(三巨
里) 숫돌고개( 石峴)쉰질바위 오리안들(鴨雁野) 오리안보(鴨雁
洑)등의 지명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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