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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면 창리(倉里)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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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석면 창리(倉里)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2-05-14 조회 1106
첨부  

창리(倉里)는 부석반도의 남쪽 끝머리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시대
에 왜현리(倭縣里)이었는데 구한말인 1895년 행정구역개편 때에
는 항촌(項村)과 창촌(倉村)으로 분할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창리(倉里)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왜현리(倭縣里)라 했던 것은 박시언(朴 彦)이란 군
수가 이곳에 침입해왔던 왜적(倭敵)을 격파하는 전과(戰果)가 있
었으므로 그때부터 왜현리(倭縣里)라 했다고 1926년 발행 서산군
지에는 기록되어 있다.(禾邊面 倭縣里 諺傳 瑞山郡守 朴 言 擊
倭縣之故 曰 倭縣里).
창리(倉里)는 조선시대 이곳에 1)주사창(舟師倉)이 있었으므로
유래된 이름이다.
동군지(同郡誌)에는 주사창(舟師倉)2)15칸(間)이 화변면 왜현리
(금부석면 창리)에 있는데 그후에 군기창고가 되더니 1896(건양
원년)에 없어졌고 다만 그 부지는 231평 2홉 7작이라 기록되어
있어 현 마을 이름도 이에 유래된 것을 알수 있다.(舟師倉十五間
在禾邊面內 倭縣里今浮石面倭縣里)(今倉里是藏軍器之朝鮮朝建陽
元年申頹壞口遺擊地二百三十一坪二合七勺).
주사창(舟師倉)에는 수군선박(水軍船舶)을 매어 두는 곳으로 거
북선 1척 방선 1척 동후선(척후선으로 추정됨)3척이 있었다고 기
록되어 있다.(1926발행군지 하권 69쪽 舟師船舶所餘字龜船一隻防
船一隻冥船一隻同候船三隻)
최근 어떤 역사학자가 창리(倉里)가 바닷가이므로 조창(漕倉)
이 있었던 곳이라 잘못 기록한 것을 바로 잡아준 일이 있는데 최
근년에는 시(市)에서도 주사창에 대한 자세한 안내판을 현지마
을에 세워진 것을 보았다.
우리 지역에서 마을 유래에 대하여 군지에 이렇게 자세히 기록
된 곳은 창리(倉里)뿐인데 마을로서는 중요한 역사를 간직한 자
랑스런 곳이다.
창리(倉里)에는 항촌(項村:목말)창촌(倉村)등의 두 개의 자연마
을로 구분되고 구창터( 倉址) 닭섬(鷄島) 쏘아섬, 대섬(竹島)
상고개(上峴) 시루섬(증) 검조도 : (檢鳥島) 아니배 조도(鳥
島) 창말나루터(倉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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