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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면 마룡리(馬龍里)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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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석면 마룡리(馬龍里)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2-05-14 조회 925
첨부  

마룡리(馬龍里)는 조선시대에 대잠리(大岑里)와 마룡교리(馬龍
橋里)로 되어 있었고 구한말인 1895년 행정구역 개편때도 변동없
이 그대로 있다가, 일제강점기인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대잠
리(大岑里) 마룡교리(馬龍橋里) 서당동(書堂洞)일부가 합쳐져 마
룡교리(馬龍橋里)에서 다리교(橋)자를 빼고 마룡리(馬龍里)라 하
였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 의하면 대잠리(大岑里)에는 37가구에 104
명이 마룡교리(馬龍橋里)에 47가구에 140명으로 합계84가구 244
명이 사는 큰 마을이었다.
1993년 부석면 간행 면세일람에 의하면 마룡리에는 140가구에
634명이 사는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서당동의 일부가 편입된
것을 가안한다면 옛날과 현재가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마을의 이름이 된 마룡(馬龍)에 대한 배경은 이러하다.
마룡리(馬龍里)4반 짚은개(深浦)마을에는 1929년의 난공농장(難
谷農場)이 된 간척지(干拓地)가 매립도기 전에는 짚은개(深(심)
浦(포))바닷가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에 담수(淡水)가 자연용출
(湧出)하는 약 6∼700평의 넓이 경주실꾸러미 한 개를 풀어도 끝
이 닿지않는 수심의 큰 연못(淵池)에 얽힌 전설은 이렇다.
우리지방 어디엔가에서는 옛날 그리고 아주 먼 옛날 어느농가
에 애기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너무도 범상치않은 애기장수 였다
고한다. 겨드랑밑에는 날개같은 비닐이 돋아나 있고 낳자마자 스
스로 일어나 앉고 서고 할뿐만 아니라 말까지 하는 것이었다.
이소문은 순식간에 퍼져서 이 애기장수가 크게 되면 나라를 휘어
잡는 무서운 사람이 될 것이란 이야기 가 있었다.
옛나에는 이러한 사람은 역적이 된다는 얘기가 있어 역적이 나
면 삼복을 멸하게 되는지라 겁을 먹은 그의 부모들이 죽여 버렸
다는 것이다.
그 뒤 마룡리 용못(龍淵)에서 용마(龍馬)가 나왔는데 용마(龍
馬)의 주인될 애기장수는 이미 부모들의 잘못으로 죽어 없어진지
라 3일간 연못주변에서 하늘을 보고 구슬피 울다가 어디론가 없
어졌다는 것이다.
이후로 이 연못을 용마연(龍馬淵)이라 했고 마을 이름도 이에
서 얻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조때 마을이름중에 다리(橋)자를 넣
은 것은 마룡리(馬龍里)2반 장안(市內)에 길이 6m폭2m의 나무다
리가 있었는데 이에 유래된 것이 아니었을까 고로(古老)들은 전
한다.
마룡리(馬龍)에는 예나 지금이나 산천외 자연경관이 뛰어날뿐더
러 토지가 비옥하고 옛날에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기본이되는 어
염시수(魚鹽柴水)를 모두 갖춘곳이서 살기에 좋은 곳이었는데 지
금도 환경이 오염되지 않고 인심이 좋은 곳으로 소문나 있다.
마룡리(馬龍里)에는 고잠(高岑) 날근터(樂隱洞) 마룡(馬龍) 도
라시 짚은개(深浦) 장안(市內)등의 자연 마을이 있고 국사봉(國
師峯) 난곡농장(難谷農場)과 심포저수시(深浦貯水池) 여우고개
용못터(龍淵池) 장군개(將軍浦) 창포샘(菖蒲井) 국샘(國井) 갯들
겡이 등의 지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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