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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면 갈마리(渴馬里)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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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석면 갈마리(渴馬里)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2-05-30 조회 1018
첨부  

갈마리(渴馬里)란 마을의 어딘가에 지형의 생김에 풍수상(風水
上) 말(馬)이 목이 말라 물을 먹는 형국(形局)이 있어서 이에 유
래 되었다 전해진다.
서산지방에서 갈마리(渴馬里)란 독립된 이명(里名)으로 이곳 말
고는 없다. 그러나 자연부락으로 불려지는 여러군데의 갈마음수
(渴馬飮水)의 풍수상형국(風水上形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갈마리의 어느곳에 갈마음수형국(渴馬飮水形局)이 있는지 또 있
다면 음택(陰宅)인지 양택(陽宅)인지 알려진 것도 없다. 부석면
(浮石面)의 주산(主山)인 도비산(都飛山) 정상에 올라 서편(西
便)으로 펼쳐진 지역전체를 조망(眺望)해 본다면 부석면(浮石面)
의 중심이랄수 있는 면소재지인 취평리를 멀리서 감싸 주고 장검
천(長劍川)이 휘돌아가는 형태야 말로 풍수(風水)에 아무런 식견
(識見)이 없는 사람이라 하드라도 갈마반도(渴馬半島)가 지역전
체를 보호해주고 감싸주는 기운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형국이야말로 면소재지 취평리는 물론 부석사에 까지 서
기(瑞氣)가 미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이러한 연유로 갈마음수(渴馬飮水)라 했을까? 아니면 이 지역
이 마산면(馬山面) 소속으로 있을때인 먼 옛날 국가에서 경영하
던 목장지대(牧場地帶)였으니 가뭄이 심할때는 수백마리의 말들
을 몰아 이곳에 옮기어 물을 먹이고 거두는 것이었으므로 이에
서 연유되어 갈마(渴馬)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볼수 있다.
갈마리(渴馬里)란 마을 이름은 조선시대는 물론 구한말 일제강
점기등 일관되게 통용된 마을 이름이다. 1759년(영조35)에 발간
된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106호의 가구에 306명이 사는 부석
면 전체로 볼때에도 인구수로는 큰 마을이었다.
갈마리는 면 소재지는 아니지만 면명(面名)이 된 부석(浮石)이
있는 마을로 면내에서 그 중요도로는 어느 곳 보다 높은 곳이라
할수 있다. 높은 산이 없고 해발 4∼50m의 저산성(低山性) 구릉
지대로 서산지방의 전형적인 지세(地勢)다. 논밭이 비옥하여 사
람살기에 좋고 주생산은 마늘 생강으로 소득을 높이는 곳이다.
80년대초에 완공된 B지구 대단위 간척지가 매립되기전까지만 하
여도 부근의 천해간사지에서 반지락 굴등이 많이 생산되어 어업
소득도 높았던 곳이다.
갈마리는 돌모루(石隅), 사정터(射亭址), 땡겻, 모심이(苧植),
산짓물들 영암(靈岩), 삼복치(三復峙), 진재(長峴), 토끼재(兎
峴), 개야지들(小犬野), 부들배미(蒲畓), 고잔마을(古棧高岑),
안고잔(內古棧), 불당골(佛堂谷), 황섬(黃島), 검연여(黑嶼) :
浮石)등의 자연마을과 지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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