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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봉면 호리(虎里)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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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팔봉면 호리(虎里)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2-05-30 조회 959
첨부  

 

호리(虎里)는 조선조때까지는 호두리(虎頭里였다. 1895년 구한말
엔 내호두리(內虎頭里)와 외호두리(外虎頭里)로 바뀌고 일제강점
기인 1914년에 이 두동리가 합쳐져 호리(虎里)로 되었다.
호두리(虎頭里)이거나 호리(虎里)이거나 간에 모두 호랑이에
서 유래된 것으로 호리 1구2반의 지형(地形)생김이 흡사 입을 크
게 벌린 범머리(虎頭)와 같아서 이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50년대까지만 하여도 인근이나 멀리 떨어진 외지에서
는 이마을을 "버머리" 또 "부머리"라 불렀다. 같은 호리지만 호
리3구는 구도( 島)라 불렀기에 외부에서는 "버머리"와 구도( 
島)는 구별된 다른 마을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구도( 島)란 호리 3구만을 지칭하는 것인데 조선시대 중기까
지 이곳에 파지도만호진(波知島萬戶鎭)1)이 있었다가 처음엔 대
산읍 독곳리 황금산 밑으로 다시 대산읍 대산리1구 구진( 鎭)으
로 옮기였기에 구도( 島)란 이름이 생겼던 것이다.
구도( 島)에는 1930년대부터 인천간에 정기 여객선이 운항되
는 바람에 서산·태안지방에서 외부와 연락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문호(門戶)로서의 역할이 컸던 곳이다.
따라서 이곳이 면소재지도 아니고 타지역과 연결되는 중요노선
의 교차지점이 아니었음에도 지방도가 우선 개설되었고 일인(日
人)들은 경찰관이 상주하는 주재소(駐在所)를 설치하였던 것이
다. 그것이 변하여 8.15광복후에도 50년대까지 팔봉면 경찰지서
가 이곳에 있었다.
호리(虎里)는 3면이 바다로 되어 있으며 가로림만 내해(內海)
쪽인 남에서 북편으로 길게 뻗은 반도(半島)여서 주변에는 어족
(魚族)자원이 풍부하여 어살(漁箭)도 많이 설치되였었고 뱅어(白
魚), 권쟁이, 낙지, 굴과 반지락등의 어획으로 주민의 소득을 풍
요롭게 하였던 곳이다.
따라서 서산지방 최고읍지(最古邑誌)인 호산록(湖山錄)에도 다
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파지도(波知島)는 군(郡)에서 30리 밖에 있는데 임진년에 군
사(軍士)와 만호(萬戶)가 전쟁에 임하여 길게 전투가 있을때에
본읍(本邑) 토민중에 흉하고 미친자가 있어 도적질한 일이 발생
하였으므로 본읍에서 즉시 잡아서 베어서 군기를 바로잡았다. 이
제 만호(萬戶)를 폐지하고 권관(權管)2)을 배치하였
다. 고파지도(古波知島)가 북쪽바다 입구에 있어서 병력을 나누
어 수자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리(虎里)에는 구도( 島) 중말(中村) 산양포(山羊浦) 갈머리
(葛頭里) 함박골(芍藥谷) 조개살 범머리(虎頭) 한살(漢箭) 쌍섬
( 島) 우럴목(雷項) 호리성지(虎里城址) 안말(內洞)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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