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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동(洞門洞)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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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문동(洞門洞)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2-06-25 조회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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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리(東門里) 또는 동문동(東門洞)이라는 이름은 조선조(朝
鮮朝)때에는 없던 이름이다.
1895년 구한말 행정구역(行政區域)을 개편할 때에 생긴 이름이
다.
조선 영조 35년 1759년에 발간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현 동문동
의 위치는 정확히 구분할 수 없으나 대체로 동문동 중 41통 근방
과 동문동 31통 중 향교가 있는 근방을 제외한 동문동 1통, 2
통, 31통 전부를 지칭하였던 것 같다. 동문 31통 중 향교골과 온
석동을 교동(校洞)으로, 동문 41통 가든회관 앞은 율지리(栗枝
里) 밤갓마을이라 하였었다.
그러나 옛날 동리의 획정인 행정구역의 획정이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조선조때의 월경지(越境地)라고 해
서 남의 행정구역안에 섬처럼 행정 관할 구역이 있었던 것을 볼
때 마을의 단위도 오늘날에 추측할 수 없는 들쑥날쑥하게 가구
의 분포에 따라 또는 길(路)의 편리에 따라 구획되었었으니 탑동
(塔洞)이란 마을 구역은 보다 광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동문동이란 1895년 이후부터 생긴 이름이고 뜻은 서산
의 내성(內城)의 동문밖(東門外)에 위치해 있다는 뜻에서 연유
된 것이다.
서산읍성(瑞山邑城)의 동문(東門)의 위치는 현재 1호광장이라
일컬어지는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이곳을 옛날에는 동
문밖이라는 뜻에서 소지명(小地名)을 ''돔밖''이라 일컬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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