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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동(壽石洞)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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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석동(壽石洞)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2-07-19 조회 871
첨부  

 

수석리는 조선조 시대에는 서산군 동암면(銅巖面) 주동리(注洞
里)와 소탐리(蘇耽里)로 되어 있던 것을 1895년 구한말 행정구
역 개편시에 수동(壽洞) 강석리(江石里) 외주동(外注洞) 내주동
(內注洞) 익동(益洞) 평리(坪里) 도곡리(道谷里)로 개편하였다
가 1914년 일제하의 행정구역 개편때에 음암면으로 되면서 수동
(壽洞) 마을의 수(壽)자와 강석(强石) 마을의 석(石)자를 따서
수석리(壽石里)로 하였었다. 1973년 7월 1일에 서산읍(瑞山邑)으
로 편입되고, 다시 1989년 1월 1일 서산읍이 서산시(瑞山市)로
승격됨에 따라 수석동(壽石洞)로 되었다.
이 마을의 특징은 소탐산(蘇耽山)에 있는 것 같다. 소탐산은
음암면 신장리와 경계에 있는 산(山)으로 해발 122m밖에 되지 않
지만 동으로 가야산(伽倻山), 북으로 간대산(艮臺山)과 성왕산
그리고 부춘산 옥녀봉(玉女峰)을 병풍처럼 두른 앞에 넓게 펼쳐
진 평야위에 알듯 모를듯 노년기의 잔구로 내려온 구릉이 마침
내 둥근 봉우리를 이룬 산이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소탐산이다.
산의 생긴 모양이 너무 아담하고 예뻐서 옛부터 이름이 있어
왔고 높은 산이 없는 이 곳 사람들에게는 비가 오지 않아 가뭄
이 심할 때 기우제도 지내고 우러러 위하는 산이 되었다.
이 산에는 명당이 있다는 전설도 있으며, 조선조 제2대 정종대
왕의 현손이요, 정종대왕의 10남인 덕천군(德泉君)의 증손으로
왕가종친인 변성군(邊城君)의 묘소가 있는 산이기도 하다.
소탐산이란 한방에서 쓰는 소엽(蘇葉)이 이 산에 자생하였거
나 주변 마을에 많이 재배한데서 산 이름도 연유된 것이 아닌지
모른다.
소엽이란 꿀풀과에 속하는 일년초로서 중국이 원산으로 원래
는 재배식물이나 야생으로도 씨가 떨어지면 잘 자란다.
들깨잎과 비슷하나 잎이 자주빛이고 향기가 있으며 줄기는 네
모지고 30cm내지 100cm까지도 자라며 여름에 담자색 꽃이 피고
한방에서는 잎은 소엽, 씨는 소재라 하여 약재로 쓰고 있다.
지형은 저산성 구릉지대이며, 마을의 전체 면적은 약 9km2 로
서 서산시 전체면적의 약 20%에 가까운 면적을 점하고 있는 넓
은 지역으로서 현재는 342가구에 1550명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지
금으로부터 230여년전에는 가구수가 42호에 인구는 114명밖에 거
주치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산은 낮지만 옛날에는 울창한
산림지대였고 낮은 골짜기만 논으로 경작하며 사람들이 산 것이
아니었을까?
옥녀봉(玉女峰) 망루(望樓)에서 건너다보면 드넓게 펼쳐진 수
석동의 짓푸른 평야지대가 가히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조망(眺望)이 좋은데 현지에 가 보아도 어느 곳이나 지대
가 얕고 굵은 마사토로 된 사질 토양이라서 무슨 곡물이든지 잘
자라는 곳으로 최근에 와서는 서산시 지역에서는 비교적 우뚝한
인물들인 공무원으로는 도지사, 차 · 부장검사, 서장 등이, 군
에서는 장군 등이 배출되고 있는 현상은 눈여겨 보아둘 지역이
다. 따라서 이 지역은 계속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될 수 있는 여
건이 충만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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