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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림동 -망운대(望雲臺) 글의 상세내용

『 석림동 -망운대(望雲臺) 』글의 상세내용을 확인하는 표로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 첨부, 내용으로 나뉘어 설명합니다.

제목 석림동 -망운대(望雲臺)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4-07-13 조회 754
첨부  

망운대(望雲臺)는 서산중학교에서 동남쪽으로 4~5m지점 덕지천
선으로 가는 도중 동남쪽 해발 3~40m의 융기한 작은 구릉의 동
산이 있는데 이 동산의 정상에 있다.
고려 고종때 정신보(鄭臣保)가 중국 절강(折江) 사람으로 송나
라에서 원외랑(院外郞)이란 벼슬을 하다가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
의 신하되기를 피하여 땟목을 타고 단신으로 바다를 건너 현 부
석면 간월도에 상륙하여 고창현(古昌顯) 현덕산(現德山) 오영노
(吳永老)의 딸에게 장가 들어 아들을 낳으니 이가 곧 서산의 위
인인 정인경(鄭仁卿)이며 정신보(鄭臣保)는 서산정씨(瑞山鄭氏)
의 시조가 되었다.
아들을 낳은 정신보는 아들을 데리고 서산 대사동(大寺洞) 마
을에 와서 살았으며 이역만리에 와서 외롭게 사는 신세를 자탄,
고국 산천이 그리워서 아침 저녁으로 앞산에 올라가 말없이 바
다 멀리 고국 하늘을 우러러 흘러가는 구름을 보노라면 더욱 고
국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간절하여져서 산 위에 망운대(望雲臺)
를 세우고 평생을 조석으로 이 대에 올라 고국을 바라보았다.
그 후 그의 외손인 진사(進士) 한영희(韓永禧)가 다시 이곳에서
살았는데 그도 경상도 창녕(昌寧) 사람으로 자기 고향을 그리워
하여 이 망운대(望雲臺)를 다시 수축하고 이 곳에서 조석으로 망
향(望鄕)하였었다.
한영희의 묘소는 서산중학교에서 남쪽으로 400m 지점에 현재
도 있으며 한영희 둘째아들인 한경춘(韓慶春)의 영향을 받은 한
경춘의 자(子)인 한여현(韓汝賢)이 호산록(湖山錄)을 지었다.
※세상사람들은 이 망운대(望雲臺)를 만대봉이라고 하는데 이것
은 잘못된 이름이다. 바로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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