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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동(邑內洞)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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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읍내동(邑內洞)
작성자 서산문화원 등록일 2002-07-19 조회 1308
첨부  

서산 지방의 원래 치소(治所)는 군명(郡名)이 부성현(富成縣)으 

로 지곡면 산성리(地谷面 山城里)에 있었으나 1182년(고려 명종
12년) 현위(縣尉)가 현령(縣令)을 핍박(逼迫)하는 불상사가 일어
났으므로 충청북도 현 옥천군(沃川郡)인 관성(管城)과 함께 관호
(管號)를 없애고 폐현되는 불운을 겪고 서산지방은 현 홍성(洪
城)인 운주(運州)에 예속되는 결과가 되었었다.
그 후 이 곳 대사동(大寺洞) (現 瑞山市 邑內, 東門, 潛紅, 溫
石, 石林, 石南洞 地方)출신인 정인경(鄭仁卿)이 몽고군이 직산
(稷山)과 신창(新昌)에 침입하자 야간에 기습하여 크게 전공을
세우므로써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으며, 충열왕(忠烈王)이 원나라
에 머물게 될 때 호종(扈從)한 점과, 1274년 충열왕(忠烈王)이
왕위(王位)에 오르는데 크게 공헌한 것이 인정되어 폐현(廢縣)되
었던 부성현(富成縣)이 1275년 (忠烈王 元年) 서주목(瑞州牧)으
로 승격되면서 치소(治所)도 정인경(鄭仁卿)이 성장지인 서산시
읍내동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일설에 의하면 치소(治所)의 위치가 처음에는 현 읍내동의 서
산시청이 있는 곳이 아니라 석림동 근방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으
나 이것을 확인할 길은 없다.
따라서 읍내동은 이때부터 서산지방의 ''''정치, 문화, 상업,

통, 예술'''' 등 모든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다.
읍내동은 북쪽으로는 해발 197.8m의 봉화산(烽火山)과 187.6m
의 부춘산(富春山), 옥녀봉(玉女蜂)을 뒤로하고 아늑하게 남쪽으
로 펼쳐진 곳이다.
옥녀봉(玉女峰)에는 북주산성(北主山城)이 있고 현 시청(市廳)
이 있는 곳(1호광장이 있는 곳)을 돔밖이라 하였고 서문(西門)
이 있던 곳은 문화회관 거리에 있는 서산수협지소 앞 근처이다.

따라서 이 곳을 섬밖 또는 서문밖, 서문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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