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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李範奭) 철기(鐵驥)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동남구문화원] - 인물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이범석(李範奭) 철기(鐵驥)
작성자 동남구문화원 등록일 2004-07-12 조회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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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이범석 ([李範奭][철기(鐵驥)]) [1900.12.1~1972] 


생 애 : 1900년 음력 10월20일 서울용동(龍洞)에서 출생하였으 
며 원난강무학교(雲南講武學校)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19년 신 
흥무관학교 교관,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교관, 1920년 사관연성 
소(士官練成所)교수부장이 되었다. 그 해 10월에는 청산리대첩에 
서 제2제대(第二梯隊)지휘관으로 크게 활약하였고, 1923년 고려 
혁명군 기병대장이 되었다. 1925년에는 소련합동민족군의 수분지 
구(綏地區)지휘관으로서 소련혁명전에 참가하였으며, 그 뒤 중국 
항일군의 흑룡강성군(黑龍江省軍)작전과장, 중국군 유럽군사시찰 
단원을 역임하였고, 1934년 뤄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 한적군 
관대장(韓籍軍官隊長)을 지냈다. 1945년 8월에는 연합군의 자격 
으로 귀국하려고 하였으나 그러지 못하다가 1946년 6월 정식으 
로 환국하였다. 1946년 10월에는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 비정 
치?비군사를 내걸고 국가지상?민족지상의 청년운동을 전개하였으 
나 집권자로부터의 억제와 국수주의적 극우단체라는 비난도 받 
아 대한청년단으로 통합되었다.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고, 1950년에는 주중국대사, 
같은해에 내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52년에는 원외 자유당 부 
당수로 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패하였으며, 1953년 이승만(李 
承晩)의 족청계 숙청으로 자유당에서 추방당하였다. 1956년에는 
무소속으로 다시 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고, 1960년 
충청남도에서 자유연맹(自由聯盟)소속 참의원(參議員)에 당선되 
었다. 1963년에는 ‘국민의 당’결성에 참여하여 최고의원이 되 
었으나 같은해 탈당하였으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받았다. 

업 적 : 청산리(靑山里)전투에서 중대장으로 참가, 전투를 승리 
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정부수립 뒤에는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의 자리를 함께 맡기도 하고 여러 고위직을 맡기도 
하며 정치가로서 면모도 과시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직선적이 
었고 저돌적이었기 때문에 정치가로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