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대동의 지명유래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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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동남구문화원 | 등록일 | 2001-11-22 | 조회 | 1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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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대 동 후릿고개(후리고개) 부대동 안터마을에서 달북재의 기슭을 넘어 샛터마을 검배골로 가는 고개. 지금은 길의 자취만 남아있고 길은 없다. 마을에 내 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어느 때의 난리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胡 人(오랑캐)들이 넘어왔다고 "胡來고개"가 변해서 후릿고개가 되 었다고 전한다. 원넘어(院넘어) 부대국민학교와 천안공업전문대학교가 있는 마을. 부대동 마을에 서 성공회교회가 있는 통마니산을 넘어서 지름길이 나왔다. 옛날 에 길가던 길손들이 머물다 가고, 잠자고 쉬어가던 곳을 院이라 고 하였다. 지금의 두정동에 옛날에 풍천원(楓川院)이라는 원이 있었다. 이 풍천원 산넘어에 있는 마을이라고 院넘어라고 하였 다. 대갈장군묘(頭墓) 경부선 철도의 서쪽. 서들넘어 성성동과의 경계에 있다. 어느 전 란때의 일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곳에 큰 무덤이 있고 그 무덤 속에는 장군의 머리만 묻혔다고 하여 대갈장군묘라고 전한다. 또 다른설에 의하면 장군이 타고 다니던 말을 묻었다고 전한다. ※ 우리나라 각처에 말무덤이 많다 이것은 대개가 백제때의 고분 으로 밝혀지고 있으니 이 무덤도 백제때의 고분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핫들(하들:下野) 부대동 마을앞에 펼쳐진 들. 아랫쪽은 서들에 이어지고 윗쪽인 동쪽은 상들에 이어진다. 상들(上野)의 반대되는 들이라 하들이 라 하였고 하들이 변해서 핫들이 되었다. 조가터(趙家垈) 안터에 있는 골짜기. 옛날 조씨姓을 가진 사람이 살던 집터라고 하여 조가터라고 하였다. 칠만지(七萬池:안터방죽) 안터마을 앞에 있는 큰 방죽. 보통 안터방죽이라고 한다. 이 방 죽을 칠만지라고 하는 까닭은 1955년 천안군 환성면의 면장으로 있었던 임석재(任碩宰)씨가 근속 10년 기념으로 제방을 쌓아 만 들었고 그가 10년근속 하면서 면내를 순시한 거리가 약 7만리는 되었을 것이라고 하여 칠만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승적골(勝賊谷) 안터앞에 있는 골짜기. 동쪽으로 산을 넘으면 성거읍 요방리에 닿는다.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이 골짜기에 서 왜군을 무찔렀다고 하여 승적골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탑골(塔谷) 안터마을앞에 있는 됨박산 골짜기. 옛날에 작은 암자가 있었고 암자앞에 탑이 있어 탑골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탑이 없고 암자 의 주춧돌만 나오고 있다. 성공회교회당(聖公會敎會堂) 1920년 11월 4일에 처음 문을 열었으며 성공회 대전교구에서도 가장 먼저 세워졌다. 창설초창기에는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 고 北一學校를 설립하였다. 지금의 북일고등학교가 그 이름을 딴 것이다. 부대동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성공회 교인이며 신앙 심이 두텁고 대동의 합심이 잘 되는 까닭도 교회를 중심으로 뭉 치기 때문이다. 등구봉 산 남쪽 옛 건물을 헐고 최근에 깨끗하 게 새로 단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