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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서동의 지명유래2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동남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안서동의 지명유래2
작성자 동남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247
첨부  
 

안 서 동 


장터골 
산촌마을에서 천안군 성거읍 요방리로 넘어가는 고개길. 접티고 
개로 길이 만들어진 후에는 길이 없어졌다. 옛날에는 큰 길이 있 
었고 길가에 장사들이 모여서 장이 섰다고 하여 장터골이라고 한 
다. 

접티고개(接峙:접시고개) 
천안시 안서동과 천안군 성거읍 요방리의 경계가 되는 고개. 지 
금은 경부고속도로가 고개 위로 지나고 있다. 고개 서쪽으로 단 
국대학교의 야구장이 있다. 접티고개 남북의 分水領으로 옛부터 
천안군과 稷山縣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郡界와 縣 
界를 이루던 고래라 接峙라고 하였다. 접티고개는 무너미 고개 
와 같이 安城川과 天安川의 源流가 되는 곳이어서 天稷山의 막바 
지로 하늘아래 첫고개라고 한다. 

※ 옛날부터 湖西지방에서 가장 높은 곳은 天安과 稷山이라고 하 
였다. 

원정골(原井谷) 
벌명당 서남쪽 승적골옆의 골짜기. 이곳에는 차고 물맛이 좋은 
냉천(冷泉)이 있어 원정골이라고 하였다. 근방의 여러 부락이 원 
정 우물을 식수로 하였으며 옷나무 독에 피부가 상한 사람들도 
이 우물로 목욕을 하면 깨끗하게 낫는다고 하여 옷샘으로 부르기 
도 한다. 

쉰질바위(五十丈岩) 
성불사 북동쪽에 있는 바위. 바위가 크고 높아서 쉬흔질(五十丈) 
이나 된다고 하여 쇤질바위라고 하였다. 

고추날 
좌불상을 향하여 올라가는 비탈진 날맹이 비탈이 심하고 고추같 
이 우뚝섰다고 고추날이라고 하였다. 

쉴터(休垈) 
각원사를 올라가는 연못아래의 터. 지금은 버스정류장이 되었 
다. 정류장이 되기 이전부터 쉴터라고 하였으니 지명이 맞아든 
셈이다. 

쇠목고개(牛首峙) 
중암마을 호서대학에서 유랑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太祖山과 王 
字山을 연결하는 오목한 곳에 최근에 포장도로가 만들어졌다. 소 
(牛)가 누워있는 목부분에 길이 났다고 쇠목고개이다. 

대골(垈谷) 
현재의 호서대학교가 세워진 자리다. 大골이라 大學이 세워졌다 
고 하나 大谷이 아니라 垈谷이다. 옛날에 쇠부리터다, 쇠부리터 
라 함은 쇠를 달구어내는 곳으로 대장간을 말한다. 수천년까지 
도 금광이 설치되었다. 지금도 동구앞의 흰복새가루는 왜정때 이 
곳 금광에서 금광석을 빻았던 돌가루다. 

대감묘(大監墓) 
상명대의 점문쪽에서 동쪽으로 호서대학의 기숙사가 있는 뒷산 
에 있다. 산위 대감산 묘를 대감묘라고 부른다. 조선 영조때의 
碩學陶庵 李○선생의 묘로 알려지고 있으나 확실치 않다. 牛峰李 
氏들에 의하여 제사 지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인 듯 하나 
확실치 않다.앞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탑골(塔谷) = 유려왕사지와 같다. 

응달말 
음달마을의 변음이다. 상암마을의 길갓마을이다. 뒤로 대감산이 
막혀서 오후에는 그늘이 지고 일조시수가 짧아서 항상 그늘이 
진 마을이라 응달말이다. 

온자묘터(은자묘터:隱者墓垈) 
성불사 위쪽 쉰질바위 아랫쪽에 있는 골짜기. 속세를 떠나 초야 
에 묻혀살던 어느 선비의 무덤이 있다고 하여 은자묘터가 변하 
여 온자묘터가 되었다. 다른설에 의하면 백제시조 온조의 사당이 
(溫祚廟) 있었다고도 하여 溫祚廟터라고 한다고 하나 확실치 않 
다. 

대좌불상(大座佛像) 
태조산 서북쪽의 기슭의 연화봉(蓮化峰) 위에 안치되었다. 귀의 
길이만도 1.75m, 높이가 14m, 둘레가 약 30m로 청동 60t이 소요 
된 동양최대의 대불이다. 12가지의 인연과 48가지의 중생의 소원 
을 들어 준다는 무량불 아미타여래상이다.1975년에 시작하여 
1977년 5월에 완성되어 현재에 이르렀으며 대좌(臺座) 밑에 지하 
에는 8만대장경과 여러 가지 불경이 보관되었다. 

203계단 
태조산 타불상을 올라가는 203계단을 말한다. 108번뇌를 상징하 
는 108개의 계단과 관세음보살의 32화신(化身)을 뜻하는 32개의 
계단과 48가지 소원과 12가지 인연을 맺어주는 아미타여래의 뜻 
과 불보, 승보, 법보를 뜻하는 3보로 전체의 계단이 203개다. 계 

단 기둥에 붉은 글씨는 통도사에 계셨던 경봉스님의 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