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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동의 지명유래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서북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구룡동의 지명유래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827
첨부  
 
구 룡 동

본래 천안군 풍세면 구룡리였으나 1984년 1월 1일에 배울(梨
谷) 중리(中里) 샛터(新垈)부락을 합쳐서 천안시에 편입 구룡동
으로 되었다. 지대가 높아서 하늘 아래 첫동리라 할 정도로 천수
답이 많아서 사람살기가 어려웠으나 지금은 지하수가 개발되고
관정을 묻어 풍요로운 마을이 되었고 도시근교에 있어서 근교농
업이 발달한 살기좋은 마을이다.

용정마을(龍井)
천안군 풍세면 미죽리와 경계를 이룬다. 마을 윗쪽에 지금도 작
은 우물이 있는데 옛날에는 대단히 큰 우물이고 이 우물속에 아
홉 마리의 용(龍)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九龍洞이고 용이
살았다고 龍井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전한다.

배울(梨谷)
중리마을의 동남쪽에 발달된 마을. 옛날에는 이 마을 앞에 배나
무가 많아서 울타리를 친 것 같다하여 배울이라고 하였다. 배는
梨를 말하고 울은 柵을 뜻하는 것으로 배나무 울타리라는 뜻이
있다.

샛터(新垈)
중리마을 서편에 있는 마을. 최근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샛
터라고 하였다.

중리(中里)
샛터(新垈)와 배울(梨谷)과 용정(龍井) 부락의 중앙에 위치하였
다고 중리다. 수리(水利)가 좋지 않지만 최근에는 과수업이 날
로 발달하고 도시 근교 농업이 성황하다.

구두물(九斗물)
중리에서 용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 있는 우물이다. 물이 많
이 나와 한꺼번에 아홉말씩 솟는다고 九斗물이다. 그러나 지금
은 우물의 흔적만 남아있고 물은 나지 않는다.

평뜸(平谷)
샛터말 남쪽에 있는 마을. 평평한 곳에 이루어진 마을이라 평뜸
이다. 뜸은 마을을 가르키는 고어다.

오릿골(五里谷)
중리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조리터라고도 부르며 풍수설에 의하
면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 부자가 된다고 하며 지형이 용의 꼬리
와 같다고 한다. 골이 깊어 5리나 된다고 오릿골이다.

양달말(陽地村)
오릿골 옆에 있는 마을. 마을이 볕이 잘 들고 종일 그늘지지 않
는다고 양달말이다.

곽산(郭山)
중리에 있는 산. 청주곽씨들이 소유하고 있어 郭山이다. 낮은 구
릉지라 최근에는 개간되어 밭이나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용정봉(龍井峰)
용정마을 뒤에 있는 산. 산이 험하고 높다. 산 아래에 용이 하늘
로 올라갔다는 우물이 있어서 용정봉이라고 하였다.

퇴성산(土城山)
중리 뒷편에 있는 산. 산의 정상부에 토성이 있다. 언제 어떤 목
적으로 축성되었는지 알수는 없으나 토성의 쌓여진 수법으로 보
아 3국시대의 백제토성이다. 동리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옛
날에 나이많은 노인을 업어다 놓던 고려장터라고도 한다. 산의 8
부능선쯤에 桶에 퇴를 두른것과 같은 토성으로 퇴뫼식 토성이다.

노적봉(路積峰)
배울마을 앞에 있는 산. 산의 모습이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것
같다고 노적봉이다. 산의 정상부에 토성이 있다. 축성연대와 용
도는 확실치 않으나 수법으로 보아 3국시대의 것임은 확실하다.
정확한 토성명칭은 없다.

피난골(避亂谷)
용정마을 아래에 있는 골짜기. 1894년 동학혁명에 많은 피난민
이 이곳에서 피난하였다고 피난골이라고 전한다.

파직이고개
경부선철로 옆으로 풍세면 미죽리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에 증기
기관차가 다닐 때 고개를 넘으려면 힘이 들어 그 소리가 "파직
이" "파직이"한다고 파직이고개다. 또 다른설에 의하면 워낙 높
은 곳이라서 벼농사 짓기가 어려워 벼농사를 짓지 못하여 피(稷)
를 심었다고 피직이고개가 변해서 파직이고개로 변했다고 한다.

욧골(窯谷)
배울마을 아래에 있는 골짜기. 이곳에는 좋은 점토가 많아서 흙
그릇 굽기에 알맞아 옛날에는 토기를 많이 생산했으나 지금은 자
취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