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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동의 지명유래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서북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구성동의 지명유래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329
첨부  
 
구 성 동

천안군 군남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고좌리
(高佐里) 복성리(福星里)를 합쳐서 구성리(九星里)라 하여 환성
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천안시에 편입되어 구성동이 되었다.
1970년대 말까지도 한가한 농촌지역이었으나 최근에 많은 아파트
가 세워지면서 천안시 남부지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굴울
구성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지금의 천안변전소가 있는 동쪽
마을이다. 굴울은 본시 "굴울"이다. 골은 谷을 말하는 것이고 울
은 柵을 뜻하는 것이다. 고로 골울이 변해서 굴울이 되었다. 고
려가 후삼국을 통일할 때 태조왕건이 접전지역을 천안지방으로
예정하였다. 이는 개성에서 북상하는 후백제군과의 거리가 천안
이 중앙지점에 닿기 때문이다. 936년 천안지방에 먼저 도착했던
고려군은 삼거리 방면으로부터 진격하여 올 후백제군을 막기 위
하여 이곳에 울(柵)을 세웠다. 이때부터 골울이라 불렀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굴울로 변했다.

고래울(高佐里)
고좌리라고도 부른다. 사면이 산지로 둘러 싸여있고 마을은 비교
적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높은 곳에 자리했다고 고좌리(高佐
里)로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나라 일을 돕고 높
은 벼슬을 하던 이들이 은거하던 고좌리(高佐里)로 불리웠다고
한다.

남원루(南院樓)
구성동 남쪽 천안삼거리 근처에 세워졌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고려 우왕 1년(1375)에 천안군수 임군석이 세웠다고 전
한다. 여행자의 편의를 위하여 세웠으며 누각이 높고 풍수지리
에 맞추어서 세워서 오가는 길손들에게 칭송이 대단하였다고 한
다. 우왕 3년(1377)에 강호문의 기문만이 오늘에 전하고 있다.

빗돌(碑石)
구성동 299번지 국도변에 바위를 비스듬히 다듬어 [前郡守朴候成
玉淸德善政碑] 라고 새겨 그의 선정을 기렸다. 朴成玉이 천안군
수로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재임하던 때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돌모롱이(빗돌모롱이)
지금의 변전소 입구와 진천가는 길 대전가는 길이 갈리는 곳에
앞서 밝힌 박성옥군수의 비가 있었고 그 비를 끼고 돌아가는 모
퉁이라 빗돌모롱이라고 하였다.

둔포재(둔폿재 : 屯浦峙)
굴울마을 북쪽에 있는 마을. 고재라고 하나 본래는 꽃재다. 옛날
의 삼남대로가 이곳으로 통하여 역말에 닿았다. 삼거리를 지나면
서 낮은 구릉이 계속하여 있고 이곳에 꽃이 만발하면 보기가 아
름다워 길손들이 꽃재(꽃핀고개)라고 하던 것이 변음되어 고재라
고 하였다.

당재(堂山)
고개 동북쪽에 높이 솟은 산. 산마루턱에 산신제를 지내던 산제
당이 있다. 해마다 2월이 되면 지냈다고 전한다. 전설에 의하며
천안군수로 있었던 김모씨의 초상을 걸어 놓았다 하나 길이 없
다. 고재마을에서 쌀과 돈을 거두어 지냈으며 만약 산제를 지내
지 않으면 마을에 재앙이 따르고 괴질이 돈다고 하며 제사를 지
내면 상서로운 일이 생기고 아들 낳는 복이 생긴다고 전한다.

불대산(높은쟁이:불도는산)
굴울마을 뒤에 있는 산. 일제때 이 산의 정상에 회전탐조등대를
세워 비행기의 길을 알려주기 위하여 불빛이 돌았다고 불도는 산
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