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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동의 지명유래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서북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백석동의 지명유래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567
첨부  
 
백 석 동

北쪽으로는 차암동, 東쪽으로는 성정동 봉명동, 南쪽으로는 불당
동, 西쪽으로는 아산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천안농공단지가
들어서면서 최근에 크게 발전되었고 아산만으로 이어지는 도로
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전망이 밝다. 마을 이름이 白石으로 불
리우는 까닭은 지금의 마을 앞에(저수지 제방이 있는 곳) 흰색
의 바위가 많이 있어서 白石으로 되었다. 백석동의 속명은 「한
들」이라고 부르며 한들은 일반적으로 「큰들」에서 연유되었다
고 전하나 실은 「흰돌」에서 온 것이다. 「흰돌」이 변해서
「한들」이 된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백석동에서 불당동으로
이어지는 넓은 들 때문에 생긴 이름 같으나 본래의 마을 이름은
「흰돌말」이다. 191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송골 산직골 승적골
을 합쳐서 白石里라 하여 영성면에 편입되었고 1931년 天安邑제
의 실시에 따라 환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에 天安市에 편입
되어 白石洞이 되었다.

호미걸이고개
성정동 봉명동에서 백석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백석동 동리에
서 바라보아 꼬부러진 고갯길이 호미를 걸어놓은 것 같은 형상이
라 호미걸이 고개다. 고개위에 올라서 바라보면 천안의 시가지
가 한눈에 보이고 고개 마루턱에 용화사가 있고 왼쪽으로는 보림
사가 있다.(고개가 S자 모양으로 되었다)

송골(松谷)
호미걸이 고개를 넘어 첫마을이다. 옛날에는 고개 양쪽에 솔밭
이 우거지고 老松이 많아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아산군 음봉
면에 통하는 길가 마을에 몇 개의 주막이 있었고 점토로 옹기그
릇을 구웠던 곳이나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몇 채의 집이 있을 뿐
이다.

서밭댕이(藷밭)
백석동리의 앞들을 말한다. 옛날에는 가뭄에 물대기가 어려워 감
자를 많이 심었다고하여 서밭이 되었다. 또는 조나 수수를 심었
다고 수수밭이라고 하여 서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옛날 이곳
에는 堂집 : 神堂이 있었다.)

건는들(乾野)
백석동 앞들이다. 물이 귀한 건답들이라 건들이다. 환서초등학교
가 있는 교문 앞에 작은 저수지(한들방죽)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는 매우 메말라서 모심기가 어려워 건들에서 온 말이다.

산적말(山寂洞)
호미걸이고개의 서남쪽에 있는 마을. 도로에서 마을이 보이지 않
고 한적하여 산적마을이다. 또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내륙지방 사람들이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아산만 쪽으로
가는 큰길가였기 때문에 산도적이 살던 산채가 있었다하여 山賊
마을이라고도 전한다.

승적골(勝賊谷)
개목뒷산(鳳棲山)넘어 서쪽의 골짜기를 말한다. 길손을 괴롭히
는 山賊들이 관군과 싸워 관군이 山賊을 무찔렀다고 勝賊골이라
고 하였다.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왜병들
을 대파한 곳이라 勝賊골이라고도 전한다.

서낭댕이(城隍堂)
백석동에서 성성동으로 넘어가는 낮은 고개에 있다. 고개를 넘나
들던 길손들이 고목나무 밑에 돌을 던져 돌묻이를 만들고 서낭신
으로부터 보호를 빌었던 곳이다. 지금은 아무 흔적도 없고 고목
만이 우뚝 섰다. 일제때는 金을 캐기 위하여 서낭당 고개 밑에까
지 광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도둑골(盜賊谷)
호미걸이 고개에서 북쪽으로 군부대가 있는 골짜기. 도둑들이 모
여 살았다고 도둑골이다. 또 이곳에는 도깨비집이 있었다. 도깨
비를 위하여 마을 사람들이 거적으로 움막을 지어주고 도깨비를
살게 하였으며 초하루 보름으로 떡을 움막앞에 해놓고 빌기도 하
였다.

※ 백석동은 아산만에서 생산되는 소금과 내륙지방에서 생산된
곡식이 교환되는 지점으로 옛부터 길손이 많았고 이에 따라서 행
인을 노리던 路賊이나 山賊도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루물(旅井)
농공단지와 백석동마을 사이에서 성성동 쪽으로 넘어가는 골짜
기. 「여우우물」이 변하여 여루물이 되었다. 여루물 북쪽에 작
은 우물이 있는데 가뭄에도 물이 끊이지 않고 넘쳐 흘러 여우들
이 먹고 갔다고 전한다.

서목골(서못골 : 西淵谷)
마을뒷편의 현재의 농공단지에 잇는 골짜기. 서목골이라고 전하
나 목골이 아니고 못골이다. 본래 이곳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 연
못이라 서못골이 서목골로 변음되었다.(지금도 작은 저수지가 있
다) 최근에 설치된 농공단지 때문에 점차 자취가 없어져 가고 있
다.

큰골(大谷)
현재의 농공단지가 들어선 자리다. 골짜기가 커서 大谷으로 불리
웠고 글자 그대로 큰골이라 큰 건물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