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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당동의 지명유래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서북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불당동의 지명유래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923
첨부  
 
불 당 동

본래 천안군의 군서면 지역으로서 지형이 풀무(쇠를 달구는데 쓰
이는 풍구:風具)와 같이 생겼다 하여 풀무골 또는 야동(冶洞)이
라고 하였으나 뒤에 불무동 불뭇골이라고 불리워졌다. 1914년 행
정구역 변경에 따라 서당골을 합쳐서 환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천안시에 속하여 불당동이 되었다.

불뭇골(풀무골)
불당동에서 가장 큰 마을. 천안시에서 가장 서쪽에 있다. 아산군
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리의 모습이 풍구(風具)와 같다하여
불무골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나 전설과는 달리 실제로 쇠
를 달구던 대장간이 많았다. 그래서 야동(冶洞)이라고도 하였
다. 대동(垈洞)이라고도 하였다.

풀무곳티
마을의 동쪽 은행나무가 있는 아래쪽이다. 옛날에는 매우 큰 대
장간이 있었다고 하며 수년전 옛날에 사용되었던 용구가 발견되
었으나 웅덩이 속에 버렸다고 한다. 매우 큰 농기구 제작소가 있
어 풀무곳이라고 하였고 "티"는 언덕이나 고개를 말하는 것으로
대장간이 있었던 언덕이라는 뜻이다.

북당골
불뭇골 마을의 서쪽에 있는 골짜기. 북당골을 경계로 아산군과
경계가 된다. 옛날 이 골짜기에 작은 사찰이 있어 불당골이라 하
였으나 뒤에 북당골로 바뀌었다. 절은 지금 전하지 않는다.

각골(笠谷:갓골)
불뭇골 북쪽 백석동과의 경계에 있는 골짜기. 골짜기의 생긴 모
습이 머리에 쓰는 갓(笠)을 닮았다고 갓골이나 소리나는대로 불
러서 각골이 되었다.

풍성골
지금은 예비군 훈련장의 사격장이 되었다. 골짜기에 물이 많이
흐르고 논밭이 농사짓기에 풍성하다고 풍성골이다.

못건너고개
백석동에서 불당동으로 넘어오는 마을 앞의 낮은 고개. 마을 앞
에 큰 연못이 있고 그 연못 건너에 있는 고개라 못건너고개다.
(연못 건너고개)또 다른 설에 의하면 마을 앞에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옛날 어느 부자가 은행나무의 큰 가지를 잘라 관재(棺材)
로 쓰려고 마차에 싣고 고개를 넘으려 하였으나 웬일인지 수레
의 바퀴가 구르지 않고 소가 걸음을 걷지 못하여 이상하게 여긴
부자는 은행나무를 내려놓고 수레를 몰았더니 잘 넘어 가는지라
동리사람들이 이때부터 넘지 못한 고개라고 하여 못건너 고개라
하였다.

등용골(等龍谷)
불뭇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산 아래에 작은 우물이 있어 옛날
에 용이 우물속에 살았다고 전하며, 용은 비가 오는 어느날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등용골이다.

숲거리
불뭇골 마을앞에 있는 낮은 구릉이다. 지금은 밭과 논으로 변했
다. 옛날에 숲이 우거져서 숲거리라고 하였다. 본래는 숲거리가
아니고 숱거리다. 옛날 풀무질을 하기 위하여 많은 숱을 쌓아 두
었던 곳이라 숱거리가 최근에 와서 숲거리로 소리나는대로 불리
워지고 있다.

텃골
불뭇골에서 서당골로 가는 길가에 있다. 옛날에는 마을이 커서
여기까지 집이 있었고 그 집 앞에 텃논과 텃밭이 펼쳐져 있어서
텃골이라고 하였다.

서당골(書堂谷)
불당동에서 두 번째로 큰 동리. 매우 큰 은행나무가 있고 그 은
행나무 옆에 옛날에 서당이 있어 서당골이라고 하였다.(지금은
없다)安씨와 卞씨가 동리의 主姓이고 동남향의 한국전형적인 농
촌이다. 바위가 있어 부엉박골이라고 한다. 부엉새는 본시 상서
로운 새로 그 울음소리가 富를 상징한다고 옛날부터 부엉새롤 닮
은 바위나 산을 위하고 믿는 관습이 있었다.

강가골(姜家谷)
서당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강씨가 이곳에서 살다가 다
른 곳으로 옮겨졌다 하여 강가골이다.

모선재(慕先齋)
서당골 북쪽에 광주 安씨들이 조상의 승덕을 기리기 위하여 지
은 齋로 고려조의 유생 안충(安沖:單)을 위하여 四賢을 모신 곳
이다.

영모제(永慕齋)
마을 남쪽 산비탈에 있는 열녀 비각. 정의창(丁義昌)의 처로
1921년 성균관으로부터 부행이 독실하여 열녀 포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