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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암동의 지명유래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서북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차암동의 지명유래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158
첨부  
 
차 암 동

天安郡의 北二面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車
垈아 郡西面의 栗枝洞과 牙山郡 一東面의 栗枝里를 합쳐서 수릿
터(車垈)와 차돌박이의 뜻을 따서 車岩里라 하여 歡城面에 편입
되었다가 1963년 天安市에 편입되어 車岩洞으로 되었다. 牙山灣
의 白石浦와 경기도의 평택 지방으로 이어지는 큰길이 있어 옛날
에는 오가는 길손이 많았다.

수리터(수레터:車垈)
차암동에서 가장 큰 마을, 마을의 생김새가 수레(車)와 같다고하
여 수렛터라 하였다고 전한다. 또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
하면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면서 牙山灣에 상륙한 淸軍이 많
은 전쟁물자를 마차에 싣고 이곳을 지나다가 고장난 마차를 고
쳐 갔다고 하여 붙여진 마을 이름이라고 전한다. 또 다른 말에
의하면 마을 뒷산에 많은 차돌(고령도)이 박혀있어 한때는 도자
기의 원료로 반출되면서 나왔다고 차돌백이라는 말이 변하여 차
대(車垈)가 되었다고 한다.

방개울(밤개울:栗枝洞)
차암동에서 두 번째로 큰마을. 수리터 남쪽에 있다. 밤나무가 많
아서 밤개울이라고 하였다. 밤은 栗로 쓰여졌고 "개"는 支와 같
은 뜻으로 쓰이며 [支]는 무엇만 못하다는 뜻이다. 本만 못한 것
이 支다. 本洞만 못한 작은 마을에서 온 뜻이다. "울"은 柵에서
온듯하다. 울타리의 첫음에서 따온 뜻으로 栗支柵에서 나온 뜻으
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붉은뫼(赤山)
일제때부터 광복후까지 금광이 이곳에 개설되어 질이 좋은 금
(金)이 많이 생산되었다. 지금은 폐광이 되었고 금광터만 남아
있다. 수리터에서 바라보아 동쪽에 우뚝솟은 산으로 아침해가 이
곳에 떠서 마을을 밝힌다. 밝은뫼가 변하여 붉은 뫼가 된 듯하
다.

옥녀봉(玉女峰)
붉은뫼와 연봉으로 수리터 앞산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정상이 평
평하여 女性像이라고 하였다. 정상은 많은 사람이 앉아서 달맞이
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말등의 안장모습으로 되어 안정스럽다.
마을 사람들은 옥양가리티라고 부른다. "옥양"은 玉과 같은 뜻이
고 가리는 山을 뜻하는 것으로 玉을 쌓은 산이라는 뜻이다.

차돌백이(차돌박이)
수레터 마을의 뒷산이다. 흰색이 차돌(石英)이 많이 박혀있어 차
돌박이다. 한때는 차돌이 도자기의 원료로 반출되었다고 전한다.

장승배기(長 垈)
수리터 북쪽 천안군 직산면으로 통하는 길가. 옛날에는 이곳에
장승이 서있어 아산지방과 천안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었다. (장
승은 이정표와 동리의 수호신으로 사용되었음)

점터(粘垈)
웃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이곳에서 나오는 粘土의 질
이 좋아 옹기그릇을 많이 굽던 터. 지금은 점터는 없어지고 옹기
그릇 조각이 많이 출토된다.

백산골(白山谷)
수리터 남쪽에 있는 골짜기. 長은 길다는 뜻이고 達은 山을 가리
키는 말로 "새"는 谷을 뜻한다. 산간에 발달된 긴 골짜기를 이른
다.

웃골(上谷)
장승배기가 있는 골짜기 北高南低의 지형이라 지형이 높은 북쪽
이라 웃골이라 하였다. 웃골 골짜기 길가에 장승이 있었으나 지
금은 터만 남아 있고 장승은 없다.

진쥴(長谷)
수리터 앞에서 방개울로 이어지는 좁고 긴들. 진줄은 「긴들」
이 길다고 하여 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