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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당동의 지명유래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서북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청당동의 지명유래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266
첨부  
 
청 당 동

본래 천안군 군남면의 지역을 청당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둔지리(新屯之里)와 거재리(巨才里)를 합
쳐서 청당리(淸堂里)라 하여 천안군 환성면에 속했다가 1953년
청당골은 천안읍에 편입하고 나머지는 환성면에 그대로 있다가
1963년에 천안시에 편입되었다.

거재(巨才)
남쪽으로는 토성산, 동쪽으로는 갈미재에 둘러싸여 아늑한 마을
로 청당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옛부터 거대한 인재가 배출된
다고 거재라고 하였다. 본래 이 마을은 土城山의 土城과 露積峰
의 土城사이에 있는 마을로 居城이다. 산성은 전투난 방어용이
고 居城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居(살거) 城(재성)의 뜻
이 거재다. 居城의 변음되고 우리나라 말로 변하여 거재가 되었
다.

용마부도(龍馬俯圖, 龍馬飛頭, 龍馬負圖)
청수동 저수지의 동쪽에서 시작된 작은 구릉이 천안삼거리로 이
어지는 곳이다. 낮은 구릉의 생김새가 龍이 머리를 하늘로 향하
여 나르는 형상이라 용마부도 또는 용마비두라고 한다. 이곳은
옛부터 명당이 있어 사람을 안장하면 후손이 잘된다는 풍수지리
설이 있다. (한화 그룹의 김승연회장 조부 金在民公의 묘소가 이
곳에 있다.)
(용마가 하도를 업은 형상이라고도 한다.)

산제당(山薺堂)
거재마을 동쪽 토성산의 북쪽 끝에 있다. 해마다 음력 10월 1일
에 마을의 안위를 위하여 이곳에서 산제를 지낸다. 최근 천안시
에서 전통민속으로 지정하여 보존되고 있다.

우렁산
거재마을 남쪽에 있는 야산. 산의 서쪽에는 九龍洞으로 넘어가
는 소로길이 있다. 산의 생김새가우렁이 목을 길게 빼고 기는 모
습과 같다고 하여 우렁산이다.

우렁소(우렁沼)
우렁산에 있는 웅덩이다. 야산의 중간부분에 있는데 이 웅덩이
에 우렁이 많이 살아서 우렁소라고 한다.

갈미재
거재마을에서 천안삼거리로 넘어가는 고개. 산에 칡이 많아서 葛
뫼라 하였던 것이 변하여 갈미재가 되었다.

탑상골
갈미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고 탑도 있어
서 탑상골이라고 전한다. 지금은 탑도 절도 없다.

원씨열녀정문
거재마을 북쪽의 야산에 있다. 원씨는 이 마을에 살던 송재혁의
부인으로 남편이 죽으면서 따라 죽었다고 송씨일가에서 세운 열
녀정문이다. 지금은 관리하는 사람이 없고 열녀비각은 낡아서 쓰
러져 가고 있다.

시누골
고재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에 시집왔
던 억센 며느리가 시누이를 내쫓아 이곳에서 막을 치고 살았다
고 시누골이라고 하였다. 또 다른설에 의하면 옛날에 장사들이
모여서 활을 쏘았던 곳이며 정자가 있어 시누골(矢樓谷)이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숲거리
마을 앞에 솔숲이 우거지고 구룡동으로 가는 길이 있다. 지금도
떡버들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져 있다.

샛터말(新屯地)
새롭게 형성된 마을이라 새터말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거미의 모
습을 닮았다고 한다. 마을의 생김새가 거미(蛛)의 모습을 닮았다
고 한다. 거미는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물고 다른곳에 가서 먹
기 때문에 그것을 닮아서 마을에서 돈을 벌면 돈 번사람은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한다.

용소골(龍沼谷)
지금의 풍세가는 길 옆의 벽돌공장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 옛날
에 큰 연못이 있었고 용이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고 용
소골이다.

청당골
청당동에서 가장 큰 마을로 청수초등학교의 동쪽에 있다. 마을
북쪽으로는 천안삼거리로 이어진다. 도시 근교농업이 발달하였
고 살기좋은 마을이다. 천수답이 많아서 논농사가 어렵고 밭농사
가 발달되었다. 옛날 이 마을에 산신당이 있어 당골이라고 하다
가 청수동이 생기면서 청당골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