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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동의 지명유래1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서북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부대동의 지명유래1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268
첨부  
 
부 대 동

천안시에서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약 4Km지점에 국도양편에 펼쳐
진마을 이마을은 삼국시대에 이미 형성된 마을이다. 한자로는 富
垈라 하여부자터로 쓰여지고 있으나 토질이 척박하여 매우 빈촌
이었으나 최근에 많은 공장이 들어서고 도시근교농업이 발달하
여 농가수입이 증대되면서 글자 그대로 富垈가 되었다. 부투리
또는 비투리락도도 부르고 있으며 부대라는 말의 원천은 복들에
서 온 것이다. 북들의 어원은 한자로 고정(鼓庭)에서 유래된 것
으로 鼓 북고와 庭 뜰정에서 북뜰이 되었던 것이 부투리로 변한
것이다.동국여지승람의 천안조에 천안북허십리유고정(天安北虛十
里有鼓庭) 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鼓庭은 천안에서 북쪽으로 십리
에 있음이 확실하다. 고려태조 王建이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고
자 후백제의 신검 양검들을 정벌하려고 天安에 8만7천5백의 大軍
을 주둔시키고 달북재(達鼓峰)에 북을 매달고 군사를 조련하였
다. 이때의 군사훈련장소가 지금의 부대동이다. 본래 천안군의
북일면에 속하였던 곳이다. 191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영성면에
편입되었다가 1931년 천안읍제가 실시되면서 환성면에 속했다가
1963년 천안시 승격에 따라 富垈洞이 되었다

애고개(왜고개)
두정동에서 부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고갯길이 굽어져 S자 모
양으로 되었고 지금의 국도다. 옛날부터의 三南大路中의 하나로
경부선 철로가 고개 옆으로 놓여졌다. 부대동 북쪽에 마을을 지
나면서 왜정때부터 해방후까지 공동묘지가 있었다. 마을에 내려
오는 전설에 의하면 공동묘지에 시신을 묻고 오던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으면서 묘지가 보이지 않으매 슬피울고 넘었다하여
「哀고개」라고 하였다 한다. 또 다른말에 의하면 어린아이들이
죽은 시신이 넘나들었다고 애고개라 하였다고 한다. 또다른 전설
에 의하면 "왜소개"로 전하기도 한다. 1597년 정유재란때 북쪽
의 성환에서 素沙坪大會戰이 있었다. 이때 倭軍의 후방기지가 이
곳에 있었다하여 倭고개라고도 전한다.

안터(內垈)
본동마을에서 동쪽으로 돌모롱이 산을 끼고 약 1㎞ 가량에 있
다. 국도변에서는 산이 가려서 보이지 않으나 양지바르고 아늑
한 10여호의 마을 북쪽은 달북재에 막혀있고 동쪽으로 산을 넘으
면 천안군 성거읍의 요방리에 닿는다. 마을의 안쪽에 자리를 잡
은 마을이라 하여 안터(內垈)라고 한다.

달북재(懸鼓山:達鼓山)
부대동 본동마을에서 동북쪽으로 바라보이는 삼각형 모양의 산.
오래전에 공동묘지가 설치되었다가 최근에 모두 없애고 산허리
를 깍아 큰 정유공장이 들어섰다. 고려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
일할 때 이곳에 많은 군사를 주둔시키고 조련할 때 달북재에 북
을 달아놓고 신호로 하였다 하여 달북재라고 하였다.

돌모롱이산
안터마을에서 서남쪽에 있는 산. 「돌모퉁이산」이 변해서 돌모
롱이 산이 되었다. 부대동 본동마을에서 안터로 가는 길가에 돌
이 튀어나와 산모퉁이를 이루고 이것으로 인하여 작은 계곡이 꼬
부라져 흐르고 좁은 오솔길이 S자 모양으로 굽어 지나고 있다.
작은 바윗돌이 산모퉁이에 튀어나왔다고 돌모롱이 산이다.

선낭당고개(城湟堂)
부대동에서 신당동으로 넘어가는 국도. 고개에 올라서면 멀리 성
환지방까지 한눈에 보인다. 天城川과 天安川의 分水領이기도한
이 고개는 동쪽으로는 달북재가 솟아있고 서쪽에 낮은 구릉에는
천안공업전문대학교가 세워졌다. 1940년대까지도 고개의 정상부
에 큰 고목이 서있었고 길가는 길손들에 의하여 던져진 돌묻이
가 있어 매우 큰 선낭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도로확장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됨박산
안터마을 앞에서 300m 가량 남쪽에 있는 산. 산의 모습이 됨박같
다하여 됨박산이다. 됨박이란 가을에 잘 여문 박을 생긴 그대로
구멍을 뚫고 속을 파내어 말려서 씨앗을 넣어 매달아 놓았다가
다음에 썼던 씨앗 보존 용구다. 산의 모습이 아래가 둥글고 그위
에 다시 둥근산을 올려 놓은 것 같다고 이름지었다. 山의 형세
가 비슷한 것이 여러개가 있어 風水地理하는 이들은 群鷄包卵形
이라고 하여(여러마리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 옛부터 명당
으로 알려진 산이다.

서들
부대동 서쪽에 있는 들. 경부선 철도의 서편 들이다. 경기평야
의 꼬리부분으로 업성동과 성환들로 이어져 평택과 안성지방의
경기평야로 이어진다. 서들 복판을 흐르는 작은 내(川)는 安城川
의 源流로 南限界의 끝부분이다. 마을의 서쪽에 있다고 서들이
다.

사기쟁이(沙器店)
신부동의 역말(驛村)동리에서 (북일고등학교가 있는 마을) 작은
야산(公山)을 넘어 부대동의 안터마을로 연결되는 오솔길이 있
다. 지금의 국도가 개설되기 이전에 있었던 옛길이다. 이 길가
에 옛날에 사기그릇을 굽던 터가 있었고 그 옆에서 구은 사기그
릇을 팔았다고 사기점이다. 사기점이 변해서 사기쟁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