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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룡동의 지명유래2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서북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삼룡동의 지명유래2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073
첨부  
 
삼 룡 동

갈미봉(갓모봉:옥녀봉)
옥녀봉을 말한다. 옛날 갓을 썼던 시절에 비가 오면 갓이 비에
젖게 되므로 갓 위에 한지를 기름먹여 만든 "갓모"라는 것이 있
었다. 갓모와 같이 끝이 뾰족하게 닮았다 하여 갓모봉이 갈미봉
으로 변했다.

마망산(馬望山)
천안여고가 있는 뒷산이다. 다른말로 맹산(孟山)이라고도 부른
다. 신창孟氏의 종산이었던 고로 맹산이라고 하였다. 또 말이 우
뚝 서서 천안삼거리의 길을 쳐다보고 있는 형상이라 마망산이라
고도 부른다.

동그락산
동여자중학교가 있는 산이다. 산지로부터 외떨어져서 동그랗게
된 산이라 동그락산이다.

나반들 고개
천안삼거리에서 목천면 응원리를 거쳐 신계리로 이어지는 고개.
고개 중턱 천안쪽으로 넓은 반석이 있어(넓은돌고개)가 변해서
나반들 고개가 되었다. 1986년 넓은돌은 천안향토사가 들에 의하
여 지석묘(고인돌)로 밝혀졌으나 독립기념관이 설치되면서 도로
확장 관계로 도로옆에 해체되어 흩어져 있다. 또 영조때에 목천
현감으로 있었던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대록지에 의하면 옛날
에 납세를 은(銀)으로 할 때 이 고개가 천안과 목천의 경계가 되
므로 목천현감이 이곳에까지 와서 은을 납세하고 갔다고 납은들
고개(納銀峙)라고 하였다고 한다. 順菴 安鼎福은 영조대의 실학
자로 東史綱目을 편찬하였다. 그는 목천현감으로 있을 때 선정
을 베풀어 현민이 그의 불망비를 세웠다. (독립기념관에 보존)

온양고개
삼거리에서 청당동을 넘어 용곡동 앞을 지나 온양가도에 이르는
곡. 온양으로 통하는 고개라 하여 온양고개라고 하였다.

배넘어고개
샛골(鳥洞)에서 목천면 지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전설에 의하면
천지창조때 큰 배 한척이 이 고개를 넘어 이빠진산(경岩山)을 지
나다 산정상부에 부딪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배(舟)가 넘어갔다
고 배넘어고개라 하나 사실을 고개 마루턱에 오래 묵은 배나무
가 있어 배나무고개가 변해서 배넘어고개가 되었다.

도리티고개(廻峙)
삼룡동 천안삼거리에서 천안군 목천면 삼성리로 넘어가는 고개.
굽이가 많이지고 가파른 고개라 돌아간다는 뜻에서 도리티다.
6.25 사변때는 미 24단 34연대 A중대가 포진했던 방어선으로 한
때 치열한 전투를 치루었던 고개다.

해너물
샛골 옆의 골짜기. 해가 넘어가는 골짜기라 해너물이다.

홍대용 시가비(洪大容의 詩歌碑)
천안삼거리공원안에 있다. 천안군 수신면 장명이 낳은 조선영조
때의 실학파중 북학파에 속하는 학자로 그의 詩歌를 돌에 새겨
金東旭박사의 주선으로 세웠다. 시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坤一草亭主人
다툼이 없으니 온갖 비방 면하겠고
재주스럽지 못하니 헛명예 있을쏘냐
수시로 좋은친구 찾아오면 아름다운
산나물 술안주가 일미라오.
난간에 비껴서서 거문고 타노니
곡조속에 슬픈사연 그뉘가 알겠는가.

독립투쟁 7의사비
삼거리공원에 세워졌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주권수호
에 몸을 바치고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해방시키려고 한목
숨을 초개같이 버리신 천안시 출신 독립투사의 비다. 1961년 세
웠다. ( 7의사 : 庾昌淳, 張斗煥, 柳重協, 趙種哲, 成達永, 姜
奭周, 金鼎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