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당동의 지명유래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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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북구문화원 | 등록일 | 2001-11-22 | 조회 | 13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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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당 동
동리의 토속지명은 샛터(新垈)다. 새로 터를 잡고 이루어진 마을 이라는 뜻에서 온 것이다. 본래 이 마을은 현재의 마을보다는 동 남쪽에 산기슭 금배골이라고 하는 곳에(현재의 신당동저수지가 있는 곳) 있었으나 1894년 동학혁명후에 현재의 마을로 옮겨진 것이다. (현재의 마을에 몇가호는 그 이전부터 있었음)국도변에 발달된 취락이라 많은 공장이 설치되었고 특히 최근에 개방교도 소가 건립된 후에는 더욱 도시화되어 가고 있다. 1914년 행정구 역 통폐합에 따라 新垈 松堂 建峰亭과 獨酒幕이 일부가 합쳐서 新垈와 松堂의 부락명을 따서 新堂里로 하여 영성동에 편입되었 다가 1931년 天安邑제가 실시되면서 환성면에 속하고 1963년 天 安市가 되면서 新堂洞이 되었다. 권선달산(權先達山) 신당동과 천안군 성거읍 요방리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마을 동쪽에 있다. 옛날 이 마을에 권선달이라는 사람이 이 산 을 사서 자기의 조상을 장례지내고 선산을 만들었다고 권선달산 이다. (先達 :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하고도 벼슬길에 오르지 못 한 사람을 말함) 세집매(三家街) 경부국도에서 서쪽으로 업성동 들어서는 길과 동쪽으로 신당동 송당부락에 들어서는 十子路邊에 있다. 약 50여년전에 세집이 세 워져 살았다고 세집매다. 지금은 10집이 모여 살고 있으며 한 개 의 부락이 형성 되었다. 검배골(黑岩谷) 지금의 신당동 저수지가 잇는 곳. 옛날 이곳에는 검은색의 큰 바 위가 있어 검은 바위골이라 하였다가 소리나는대로 준말이 되어 검배골이 되었다. 신당동마을이 처음에는 이곳에 있었으나 1894 년 이후에 현재의 마을로 옮겨갔다. 검배방죽 검은바위골 방죽이다. 지금의 신당동 저수지를 말한다. 큰봉재, 작은봉재 샛터마을의 뒷산이다. 마을뒤의 큰봉우리고 작은봉재는 큰봉재 의 앞에 있는 산을 말한다. 마을의 안산이다. 峰은 산을 뜻하고 재는 낮은 구릉이나 고개를 이르는 말로 큰봉재를 넘어가는 고갯 길이 있어 천안군 성거읍의 석교리로 넘는 길이 있다. 동리에 전 해오는 말에 의하면 1919년 3.1운동때 봉화를 이곳에서 올렸다 는 말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월경리(월갱이 : 越境, 松堂) 샛터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1.5km 정도에 있다. 본래 稷山현에 속 하였던 곳이나 1914년에 천안읍의 환성면에 속하게 되었다가 天 安市에 편입되었다. 옛날에는 天安邑과 稷山縣 사이에 끼있어 天 安 방에서 잠자고 직산부엌에서 밥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며 한집이 방과 부엌을 나눌 정도로 경계에 있는 부락이다. 부엌과 방을 오가는 사이에 경계를 넘나든다고 하여 越境이다. 앞마을 의 솔밭에 松亭이라는 亭子가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자취도 없 다. 재마당(제마탕:祭堂) 샛터마을 뒤쪽에 있는 산기슭. 약간의 비탈은 되어 있으나 넓고 커서 마을의 놀이터로 이용되었으나 최근에는 밭이 되었다. 마을 의 동제나 산제를 지내던 곳으로 재마당은 祭堂이 변해서 된 말 이다. 수렁골(濕谷) 검배방죽(신당동저수지)이 있는 골짜기. 수렁논이 많아서 수렁골 이다. 수렁이란 습기가 많은 늪지대를 말하는 것으로 심한곳은 사람이나 짐승이 늪에 빠지면 그대로 파묻혀 죽게되는 경우도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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