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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동의 지명유래1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서북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쌍용동의 지명유래1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386
첨부  
 
쌍 용 동

본래 천안군의 군서면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미라리(彌羅里) 쌍정리(雙井里) 용암리(龍岩里)를 합하여 雙井
과 龍岩의 머릿자를 따서 쌍룡리라고 하여 천안군 환성면에 속하
였으나 1963년 천안시에 편입되었다.최근에는 주변에 학교가 많
이 설립되고 마을이 도시화 되어 농촌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미라골(彌羅谷:미륵골)
중군산(中軍山) 밑에 형성된 마을. 동리의 북동쪽에 건립연대가
확실치 않은 사찰지가 있으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사찰의 이름이 미륵사라 마을 이름을 미라골이라
고 하였다고 한다.쌍룡동에서는 가장 큰 마을로 마을의 반수가
(全州李氏의 집촌이다.

미륵불(彌勒佛)
미라골 동리입구 길가에 있다. 높이 1.4m의 자연석으로 흡사 석
불을 닮았다. 언제 누가 세웠는지는 알 수는 없다. 미륵사에 있
었던 자연석불을 사찰이 폐사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나 이
것도 확실치 않다. 본 미륵불은 선사시대의 유물로 보는 것이 좋
다. 선사시대에 사람들이 집단 정착하던 곳에 세워진 선돌(立
石:Menhir)이다. 마을과 마을은 경계를 표시하였고 때로는 신앙
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대개 이와 같은 선돌이 서 있는 곳은 선
돌말이라고 한다. 미륵불은 지금의 보호각을 만들어 마을에서
잘 보전하고 있으며 봄 가을로 마을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가누물고개
미라골에서 용암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넘어에 최근에 용화
사라는 절이 세워졌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아산땅에서 이곳으
로 시집왔던 색시가 시집오자 며칠이 되지 않아 남편이 죽어 친
정으로 돌아가면서 울며 눈물을 흘렸다고 가는 눈물고개가 가누
물고개로 변했다고 하며 또 다른 설에 의하면 고개 마루턱에 작
은 우물이 있어서 "가는 우물고개"가 변음되어 가누물 고개가 되
었다고 한다.

절골(寺谷)
미라골 마을의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지금도 절터에서 장대석
이 나오고 있으며 주초돌이 나와 밭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찰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동리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미
륵사라는 사명을 가진 사찰이 있었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여지
승람이나 영성지에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작은 암자가 있었
던 것으로 생각된다.)

장개목
미라골 마을에서 봉명동 개목부락으로 넘어가는 고개. 개목부락
은 옛날부터 해변의 소금과 내륙지방의 곡식이 교환되었던 곳이
라 미라골 마을에서 장을 보러 넘어가는 고개라 장고개라고 하였
다.

가장골
미라골 마을에서 천안고등학교로 통하는 골짜기. 미라골 사람들
이 시내로 장보러 넘어 다니는 고개라 가장골이라 하였다.

중군산(둥군산 : 中軍山)
미라골 마을의 뒷산이다. 흔히 산의 모습이 둥글다고 둥군산이
라 하나 잘못된 것이다. 중군산이 옳다.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
를 공략할 때 中軍이 주둔했다 하여 중군산이라 한다. 최근에 중
군산이 변해서 둥근산이 되었다. 산의 남쪽 기슭에 최근에 용화
사라는 사찰을 짓고 원봉산용화사라고 이름한 원봉산은 둥근봉
을 한자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