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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동의 지명유래1 게시판 상세보기

[천안서북구문화원] - 지명 내용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오룡동의 지명유래1
작성자 서북구문화원 등록일 2001-11-22 조회 1080
첨부  
 
오 룡 동

천안읍성(邑成) 안에 있는 동으로 지금부터 백년전에는 천안의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다. 관아와 객사 문루등이 있어서 많은 사
람이 오가는 번화가였다. 1920년 지방행정 구역변경으로 읍내리
일부를 갈라서 왜식동명으로 욱정(旭町)이라고 하였다가 1946년
해방후에 왜식동명을 없애고 오룡쟁주(五龍爭珠)의 지형설에 따
라 오룡동이라고 하였다.

객사(客寺)
지금은 충청은행이 있는 뒷편이다. 객사는 각고을의 관아에 예속
된 관사를 말한다. 임금님의 전패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날
에 예절을 향하여 절을 하고 사신이나 관리의 숙소로 이용되었
다. 한일합방후에 무너졌던 건물을 민가로 사용하다가 시에서 헐
어다가 남산공원 위에 정자를 세우고 용주정이라 하였다.

화축관(華祝館)
지금의 중앙국민학교 정문 앞에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4년
뒤 천안군수로 있었던 "노대하"가 천안의 정관으로 세웠으나 세
월이 흐르면서 낡고 허물어져 지금은 없어졌다. 현종 7년(1666)
에 군수 조경빈이 개축하였고 현종이 자주 온양온천에 가면서 행
제궁으로 지었다. 화축관을 중수하는데는 충청감사 민유중(閔維
重)과 경상감사 이태연(李泰淵)통제사 이기성(李祈聲) 충청병사
이원로(李元老) 전라병사 민진익(閔震益)등이다. 영조 26년
(1751)에 왕이 온양에 행차할 때 직산의 영소정이 머무르면서
「憶昔感懷」란 현판을 문루인 영남루에 친필로 써서 걸게 하였
다. 또 우암 송시열선생이 지은 기문이 남아있어 그 내력을 자세
히 알 수 있다.

내아터(內衙垈)
오룡동에서 184번지 지금이 오룡우체국이 세워진 곳이다. 동헌
(東軒)의 지형이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이라 이곳에서 아들을
낳으면 귀인이 된다고 전한다.1989년에 오룡우체국을 다시 지으
면서 도헌자리에서 많은 주추돌과 조선시대의 와당이 나왔다.

선화루터(宣化樓:同樂堂)
오룡동 184번지 지금의 오룡우체국이 세워진 곳이다. 동헌(東軒)
의 지형이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이라 이곳에서 아들을 낳으면
귀인이 된다고 전한다. 1989년에 오룡우체국을 다시 지을 때 동
헌자리에서 많은 주춧돌과 조선시대의 와당이 나왔다.

동헌터(東軒)
오룡동 199번지 지금의 충청은행이 있는 바로 뒤다.이곳은 오룡
쟁주형의 황룡에 해당되는 곳이고 황룡의 눈언저리로 서기를 발
하고 통찰하는 관아의 터로는 알맞다고 전한다. 터가 세서 민가
로는 알맞는 터가 못되고 관청의 터로 알맞는 곳이라고 한다.
약 40년전에 천안의 어느 부자가 이 터에다 큰집을 지었으나 이
사하자 곧 죽었다고 한다.

삼문터(三門)
오룡동 188번지에 있었던 동헌의 정문터. 대개의 동헌 정문은
세 개로 되었고 삼태극을 그려 문을 표시했다. 가운데의 문은 높
고 양쪽에 작은 문을 두 개 내어 일반인이 드나들도록 만들어진
문이다.

영남루터(永南樓)
오룡동 118번지에 있었던 문루. 본래 동헌 근처에 있었으나 1919
년 이후에 중앙국민학교 운동장 서쪽에 옮겨 세워졌다가 1953년
삼거리공원의 연못가에 세웠다.

동리(東里)
지금의 오룡동지방을 일컫는 말. 천안을 동리 중리 서리로 나누
어 부를 때 천안의 동쪽지방이라고 동리라고 하였다. 13. 백석동
(白石洞) 北쪽으로는 차암동, 東으로는 성정동, 봉명동, 南으로
는 불당동, 西쪽으로는 아산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천안농공
단지가 들어서면서 최근에 크게 발전되었고 아산만으로 이어지
는 도로가 마을을 관통하고 있어 전망이 밝다. 마을 이름이 白石
으로 불리우는 까닭은 지금의 마을 앞에9저수지 제방이 있는
곳) 흰색의 바위가 많이 있어서 白石으로 되었다. 백석동의 속명
은 「한들」이라고 부르며 한들은 일반적으로 「큰들」에서 연유
되었다고 전하나 실은 「흰돌」에서 온 것이다. 「흰돌」이 변해
서 「한들」이 된것이다. 언듯 생각하기에 백석동에서 불당동으
로 이어지는 넓은 들 때문에 생긴 이름같으나 본래의 마을 이름
은 「흰돌말」이다. 1914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송골 산직골 승적
골을 합쳐서 白石里라 하여 영성면에 편입되었고 1931년 天安市
에 편입되어 白石洞이 되었다.

호미걸이고개
성정동 봉명동에서 백석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백석동 동리에
서 바라보아 꼬부러진 고갯길이 호미를 걸어 놓은 것 같은 형상
아라 호미걸이 고개다. 고개위에 올라서 바라보면 천안의 시가지
가 한눈에 보이고 고개 마루턱에 용화사가 있고 왼쪽으로는 보림
사가 있다.(고개가 S자 모양으로 되었다.)